독자 마당

독자 투고

살아남을 자들을 위하여(1)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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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에 잠에서 깼다. 꿈에서 맡은 냄새다. 깨어나서도 한 참 동안, 내 코는 그 악취를 기억했다. 오빠가 죽었나? 호스피스에선 연락이 없다. 살아있는 사람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다. 동생과 전화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이 기다림. 그렇다고 오빠의 현 상황을 보면서, 오빠가 더 오래살길 바라는 것도 옳지 않는, 이 현실이 힘들었다.

나는 면회를 가야겠다. 어제도 오늘도 성남이가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내가 직접 성남이 죽기 전에 봐야겠다.” 어머니가 새벽부터 전화를 하셨다. 막무가내로 오빠에게 가본단다. 코로나19로 면회가 어려워진 것도 있지만, 호스피스 병원에선 부모님이 고령이시니 직접 면회를 하는 것을 반대했다. 면회 후 충격이 걱정된다고 했다.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가 꺼져 있다. 나도 걱정이 됐다. 간호사와 먼저 통화를 하고, 어머니께 전화해서 병원에서 연락이 없다는 건,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오빠 전화가 왔다. 새언니가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갔다고 놀라서 오빠에게 연락을 한 거다. 내가 긴급생활비지원을 받기 위해 오빠 통장을 정리했다고 했다. 오빠나 새언니는 이런 식이다. 자기들 급하면 전화가 된다.

오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 번 주세요. 어제부터 오빠와 전화가 되지 않는다고 걱정을 많이 해요. 오빠가 힘들겠지만, 그래도 연락을 자주 해주세요.”

그러게, 내가 전화를 해야지. 미안하다. 내가 전화를 자주 꺼놓고 있다. 전화 받는 것도 피곤해서 말이지.”

어머니는 오빠와 통화를 하고 마음을 놓으셨다. 아버지는 아픈 오빠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신다. 그래서 아버지는 면회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전화를 해서 계속 기적에 대해 말씀을 하신다. 나도 아버지의 기적을 같이 믿는다고 했다. 어쩌면 일어날지 모르는 기적을 우리 모두는 바라고 있다. 우리는 오빠가 병에서 기적처럼 낫거나, 오빠가 더 아프지 않고 죽길 바라고 있다.

나는 오빠의 재난적 의료비 지원, 긴급생활비 지원,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신청까지 관공서 일을 처리하는 것도 바빴다. 5살과 8살 조카와 새언니는 어떻게든 살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한 번은 남편에게 우리가 천안에 도울 수 있는 돈을 얼마 정도로 보냐고 물었다. 나는 3천만 원, 5천만 원 정도 되냐고 물었다. 남편이 매우 당황하면서 내 질문을 탓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어? 금액을 정해 그 만큼은 쓰고, 그 이상은 쓰지 않는다는 걸, 정하라는 게 말이 돼? 상황에 따라 써야 된다면 쓰고 해야지. 어떻게 돈을 정해놓고 쓴다는 거야. 난 당신 질문이 내게 무례하게 들려.”

미안해요.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선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 놓자는 건데 말이 이상하게 나왔어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을 미리 정해두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5살과 8살 조카가 불쌍하지만, 우리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이 부분을 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거예요

나는 동생들에게 오빠 사후, 천안 언니와 조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을 했다. 새언니는 친정언니가 살고 있는 부산에도, 우리 부모님이 살고 있는 양양도 다 싫고, 천안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내가 계속 천안을 오고 가며, 돌볼 수는 없는 거다. 고맙게도 양양 제부가 만약 새언니가 아이들을 돌보기 어렵다면, 아이들을 데려와 키우겠다고 했다. 양양 동생은 일단 아이들이 어리니 엄마가 좀 부족해도, 엄마가 돌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적합한 시설을 알아봤다. 내겐 시설로 아이들을 옮길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새언니가 지금처럼 아이들의 식습관과 생활을 관리하지 못하면, 오빠처럼, 아이들도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생이 나보고 일단 왕솔이가 3학년 정도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한다. 아이가 크면, 새언니가 아닌 왕솔이와 직접 의사소통을 하자고 했다. 왕솔이를 데리고 치과에 가야 한다. 3살 때 치료받은 후, 앞니 영구치도 손상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새언니는 은근히 안나의 이를 보여주며, 나보고 왕솔이처럼 안나를 치과에 데리고 가길 바라는 마음을 내보인다. 나는 아이가 목숨 걸고 치과 치료를 받는 것보다, 영구치가 손상되어 나오는 걸로 마음을 비웠다. 왕솔이와 안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카톡에 올라 온 다른 조카들의 사진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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