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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식이 희소식인 가족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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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소식이 희소식인 가족이 있다. 나보다 2살 많은 1971년생 오빠다. 명절에는 보지만 2년 넘게 특별한 소식이 없던 오빠네. 베트남 새언니가 오빠가 많이 아픈데,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어머니께 영상통화를 하면서 울었단다. 누워 있는 아들을 보고, 놀란 어머니가 기차를 타고 천안가고 있다는 소식을 양양 동생을 통해 들었다. 부산에 사시던 부모님을 지난 6월말, 동생이 사는 집 근처로 오시게 했다. 부산에서 팔순이 넘은 부모님 두 분이 생활하시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한 번씩 응급실을 찾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동생과 내가 위급상황에 돌아가면 부산을 방문했다가 더 늦기 전에 양양으로 모시는 걸로 합의를 봤다. 당연히 오빠를 제외한 우리들만의 합의. 우리들이 오빠에게 바라는 것은 그냥 자기 가족만 잘 챙기며 살길 바라는 것, 그것뿐! 2020728일 일이다.

2020926일 오빠는 죽었다.

오늘은 125. 나는 올해가 가기 전, 오빠의 죽음에 대한 기록, 나와 오빠의 관계를 글로 정리하기로 했다.

오빠는 태어나면서 옛날 어른들이 말하는 우는 경기에 걸렸다고 한다. 나는 약한 뇌성마비가 있었다고 추측한다. 그리고 지능은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그 경계선에 있다고 본다. 오빠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사고를 치지 않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서른 넘어가면서 돈으로 사고를 쳤다. 카드빚과 사채, 그리고 주식까지. 10년 전, 부모님이 살던 집을 팔아 지금 천안의 작은 아파트를 사줬더니, 그걸 담보로 또 주식을 했다. 베트남 새언니와 결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 사고를 마지막으로 10년 동안 돈 문제는 조용했다.

오빠를 단국대 병원에서 청주의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긴 날, 915. 내가 원무과에 계산을 하러 갔는데, 오빠가 병실에서 급하게 나를 찾았다. “나는 지옥에 갈 거야. 주식을 했다. 오늘 다 팔았다. 주식으로 진 빚을, 주식을 판돈으로 해결하면 될 거야. 미안하다.”며 오빠는 내게 숨겨둔 카드들과 통장을 줬다. “오빠, 정말 내게 더 이상 거짓말 하면 안 된다. 내가 해결할 수 있도록 오빠의 빚을 내게 다 알려줘야 한다. 새언니와 아이들 사는 것도 내가 돌봐야 하니까 알지?” 오빠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고 더 이상의 빚은 없다고 했다.

청주 호스피스 병원에 오빠를 입원시키고 나는 그날 밤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돌아왔다. 오빠가 주야교대근무를 하면서 어떻게든 베트남 새언니와 5, 8살 아이를 키우기 위해 힘쓰다가 암에 걸렸다고, 우리 오빠 불쌍하다고 울던 나는 오빠의 어리석음에 울었다. 세상살이 뭐가 중요한지 모르고 살다가 자기 죽을 줄도 모르고, 마지막까지 주식을 놓지 않았던 오빠가 내 오빠라서 울었다. 무엇보다 한국말도 잘 못하는 베트남 새언니와 8살과 5살 조카를 내가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에 치여 나는 울었다. 오빠 살아서도 오빠 사고 수습, 죽어서도 오빠 사고 수습해야 할, 내 인생도 너무 불쌍해서 울었다.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비행기에서도, 공항에서 남편을 만나러 가는 급행버스에서도 계속 울기만 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남편이 버스터미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남편의 가족이야기. 남편은 40년 넘게 정신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치매가 온 아버지를 홀로 부양했다. 올 초에 두 분을 같은 요양원에 지내게 하면서 이제야 겨우 가족이 주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기 인생을 살게 됐다. 그런데 이제 처가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천안 오빠가 자기 죽으면 새언니와 아이들을 베트남에 보내던지 아니면 부모님 근처에 살게 해달라고 했다. 5살 아이는 어리니까 엄마가 데리고 살고 8살 아이는 자식이 없는 우리 부부가 키우기를 원했다. 나는 남편에게 내 가족의 짐까지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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