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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시내버스를 아십니까?

이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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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시내버스를 아십니까? 이영균 / 진주 시민 지난 1월 21일, 우리 동네 경남 진주에서는 시내버스로 변신한 관광버스를 보아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진주 시내버스 4개 회사 가운데 가장 큰 한 회사가 운행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파업입니다. 그러자 진주시에서는 관광버스 100대를 시내버스로 들이댄 겁니다. 관광버스에는 카드를 찍고 환승할 수 있는 기기가 없어 그런지 무료로 운행했습니다. ‘무료시내버스’라고 붙이고 다녔습니다. 다른 동네 사람들이 보면 많이 부러울지도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느 도시에나 시내버스가 있고, 군 지역에는 군내버스도 있습니다. 시내버스나 군내버스가 파업으로 운행을 중단했다는 말은 좀처럼 듣기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 동네 그 시내버스 회사는 그렇게 했을까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표준운송원가를 올려달라는 겁니다. 시내버스가 시민의 발이라는 공공성 때문에 시에서는 일정한 예산을 시내버스 회사에 지원하는데, 정해놓은 절차에 따라 산정하는 표준운송원가라는 게 있답니다. (이런 용어를 모르고 사는 게 행복한 세상입니다. 황우석 사태가 일어났을 때 ‘줄기세포’를 알아야 했고 세월호 사건에서는 ‘평행수’라는 말을 알게 됐는데, 몰라도 되는 말들입니다.) 진주시에서 지원하는 표준운송원가로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니 다시 산정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2017년에 개편한 시내버스 노선 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시내버스는 회사마다 고유한 노선이 있는데, 시내버스 노선을 개편하면서 노선권을 진주시에서 가져가고 적자가 생기면 시 예산으로 채워주겠다고 약속을 했답니다. 이 대목에서는 회사와 진주시의 주장이 엇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수익성이 있는 노선을 내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고, 그로 인한 적자가 발생했답니다. 적자가 발생할 걸 예상하지 못하지 않았을 터인데 노선권을 순순히 내놓은 회사가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핀잔을 들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을’의 입장을 헤아려보면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니었을까요? 적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표준운송원가에다가 노선개편으로 인한 수입 감소가 누적되면서 임금도 밀리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창구도 없고 하니 궁여지책으로 파업을 단행한 겁니다. 파업은 예고돼 있었고, 파업이 단행된 그날 새벽부터 관광시내버스 100대가 시내를 누빕니다. 그것도 앞면에 파업이 불법이라는 펼침막을 달고 달립니다. 서로 간 감정의 골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아야 하는 시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착잡했을까요. 관광시내버스는 많이 불편했습니다. 우선 출입문이 하나뿐입니다. 타고 내리는 계단도 높이가 다릅니다. 통로가 좁아 다니기에는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 안내방송이 안 나오니 내려야 할 데를 놓치기도 했을 겁니다. 창문에는 짙은 선팅지를 붙였으니 야간에는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 알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노약자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농촌지역에서 농산물을 시내까지 가지고 나와서 팔아야 하는 시골 할머니들은 그 관광시내버스를 어떻게 타고 내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파업 시작은 방학 중이었는데 개학을 하고 나니 학생들 등교에 따른 불만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관광버스를 모는 기사님들이 시내버스를 몰던 기사님들과 같을 수 없어서 생기는 문제들이 불거진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거리로 나온 시내버스 노동자들은 시민들을 상대로 절박한 입장을 호소하기도 하고, 진주시를 상대로 대화를 촉구하기도 합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진주시의 입장은 전혀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파업 전면 철회가 대화 전제 조건이라는 겁니다. 시청 앞마당에 농성천막이 생겼습니다. 집회와 농성이 이어졌습니다. 주말이면 시내버스 노동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글자판을 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돌로 지은 진주시청은 아주 단단하고 튼튼했습니다. 작은 충돌로 인한 불상사도 있었습니다. 3월 들어 학생들이 개학을 하니 관광시내버스에 대한 불만은 날로 높아지기만 했지요. 달라진 것은 철탑 농성과 운행 재개입니다. 3월 5일, 운행중단 44일째 되는 날 시내버스 노동자 두 사람이 45m 철탑 농성을 시작합니다. ‘고공철탑농성’이 아주 먼 동네 이야기로만 알았는데……. 그리고 3월 11일 시내버스 노동자들은 업무에 복귀하고 시내버스는 예전처럼 달리고 있습니다. 관광시내버스가 사라졌습니다. 이제 모든 눈길은 45m 철탑으로 쏠립니다. “시내버스 운행을 재개했으니 대화에 나서라!” “전면 파업철회가 아니니 대화할 수 없다.” 이렇게 맞서고 있었고, 철탑 주변에서 벌어진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았답니다. 이런 가운데서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사태를 해결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시의회 의장과 운영위원장을 면담하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시의원들과도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시의회에서 진주 시내버스 문제를 제대로 살필 수 있는 특위를 만들어서 시내버스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진통 끝에 특위가 구성됐습니다. 이어서 시민단체 대표와 시의회 운영위원장이 철탑에 올라 농성 해제를 요청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들은 농성 해제는커녕 오히려 단식으로 맞섰습니다. 잦은 비에다가 궂은 날씨가 이어지니 아래서 위를 쳐다보는 가슴들은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럼에도 대화나 소통이라는 말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결단은 그들이 먼저 내렸습니다. 저렇게 ‘농성 해제’를 외치고 있으니 우리가 내려가자. 그러면 대화와 소통의 물꼬를 틀 수 있지 않겠는가? 53일 만에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비바람에 젖고 몸이 무너져 내리면서도 최저임금 보장을 외쳤던 그들이 내려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체포영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그들의 건강이 회복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빨리 그들의 건강이 회복되고, 소통의 장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대화가 잘 되어 진주시민들이 기사님들께 고마워하며 평안하게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관광(무료)시내버스는 어쩌면 값진 경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는 경험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달갑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꿈틀거리던 시내버스와 관련한 문제는 지난 1월 21일 터졌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와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꽃 피는 봄이 왔지만 파업을 한 시내버스 노동자들에게 봄은 더 가혹했습니다. 봄이 가고 여름 문턱에 들어섭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반목과 갈등에서 대화와 소통을 지나 협력과 상생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어제 청계천에서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을 개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기사에는 이런 문장이 씌어 있는 사진도 보입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49년 전에 분신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노동절입니다.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주에서 시내버스 파업과 관련하여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면 검색창에서 <독립언론 단디뉴스>를 찾아서 ‘진주 시내버스 삼성교통 파업’을 치면 그 경과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 작은책 안녕하세요 이영균 독자님. 투고 고맙습니다. 진주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네요. 독자님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편집부와 공유했습니다. 싣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2019-05-07 11:24 댓글삭제
  • 이영균 "진주시 호탄동 소재 45m 높이 이동통신 중계기 철탑에 올라가 53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던 시내버스 노동자 2명이 전파법, 집시법, 옥외광고물법 위반 혐의를 받아 오다 검찰의 결정으로 석방되었다."는 보도를 오마이뉴스에서 보았습니다.(5월 8일) 2019-05-09 07:52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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