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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혁명?

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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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둘이 전철 안으로 들어왔다. 뭐가 재미 있는지 말이 끊이지 않는다. 끼어들었다. 영어 불어 독일어가 아니고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이다. 더 흥미가 갔다. 스와힐리어란다. 아프리카 분쟁을 공부할 때 분명 마주친 건대그 쪽에서 물었다. ‘너는 한국인이니?’

외국에서 누가 물으면 안드로메다에서 왔다고 답하곤 했다. 국적 따위가 뭔 의미가 있었던가? 그건 그냥 여권에 존재했다. 비자 연장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일 뿐이었다.

서로 길게 얘기할 사이는 아니었다. 이럴 땐 그냥 그렇다고 말하는 게 낫다. 나를 둘러싼 시간과 장소로 나와 사회를 더 이해하고 싶은 경우 또는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달랐을 것이다. 또 안드로메다를 불렀을 것이다.

사고였다. 여기 태어난 것은. 이름자도 못 쓰고 학교에 갔더니나 너 우리 나라 대한민국이란다. 뭔가 했다. 그냥 짝꿍 주연이가 좋았다. 사고가 싫다면 우연이랄 수도 있다. 어쨌든 둘 다 accident. 

18세기 후반 프랑스라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대혁명이 벌어졌다. 자유롭게 표명된 인간의 의지’가 국가를 형성한. 사회계약이다. 당시에는 근대적인 국경 개념이 없었다. 알사스 지방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상당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혁명으로 봉건제가 폐지되었다. 알사스 지방민은 혁명을 지지했다. 프랑스와 통합하면 봉건적 의무에서 해방될 것이었다. 독일 제후들이 불만스러워 했지만 알사스의 프랑스 통합은 인민의 자유 의지였다. 알사스 지방민은 스스로 무장하고 혁명을 지켰다.

오늘의 세계를 구성하는 두 개의 혁명이 있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이다. 전자는 오늘의 경제적 삶, 후자는 정치적 삶의 근원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정치적 삶도 프랑스 대혁명의 모습과 비슷해야 마땅하다.

계약서를 쓴 기억이 없다. 자유 의지로 내가 대한민국을 형성시킨 적이 없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또는 대한민국 정부를 세운 사람들이나 내가 같은 단군 할아버지 자손이니 선조의 계약이 자동 승계되었다고 말해도 그건 억지일 뿐이다. 단군 할아버지 말고 다른 분도 많았다. 다른 천손이 하백 할머니하고 자손을 낳았다. 혁거세 할아버지는 알에서 태어나셨고 할머니는 모르지만 자손을 많이 낳았을 것이다. 제주도를 땅부터 하나하나 만드신 거인 할머니도 할아버지 없이 고된 일을 혼자 다 하셨다. 할아버지는 코빼기도 안 비추었으니 놈팽이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 모두 한 할아버지 자손이라는 건 억지다.

대한민국은위대한 한민족의 국가라는 말이다. 위대한지는 건너 뛰고, 민족을 보자. 정확히 1900년 신문에민족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민족은 그 무렵 중국에서 건너 왔다. 중국은 독일에서 민족을 받아들였다. 일본 역시 중국과 비슷한 시기에 이 단어를 독일 문헌에서 번역했다. 민족은 서구적 개념이다. 왕과 귀족이 누리던 신분의 특권을 없애고 자유, 평등, 우애를 기치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면서 출현했다.

만약 18세기에 우리는 다 같은 한민족이라고 떠들었다면 아마도 왕에 대한 불경, 역적으로 몰렸을 것이다. 임금은 하늘에서 낳으신 분인데 어찌 천한 것들과 같다는 말인가? 민족이란 개념은 애초에 자유, 평등, 우애 같은 근대적 개념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

제국주의 압박을 받던 시절 민족은 억압에 맞서 행동할 주체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공통의 적에 맞서 단결하면서 민족은 구성되었고 나아가 자연적인 것이 되었다. 산과 들이 저 곳에 저 대로 수천년 있었던 것처럼 민족도 그런 것이 되었다.

신채호의 사상 변화만 보아도 민족이 인위적이고 근대적인 형성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채호는 독립군 교육을 위해 일종의 역사 교재를 썼는데, ‘우리 민족의 위대함에 대해 구구절절이 말했다. 몇 년 후, 그는 민족이 제국주의에 맞서는데 불충분하다고 버린다. 무정부주의로의 변신이다.

결국 대한민국은 한민족의 국가가 아니다. 국가는 내게 주연이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주연이는 지우개도 잘 빌려주고, 책상에 선 긋고 넘지 말라 하지 않았다. 국가는 걸어 가는데 갑자기 튀어 나와 멈춰했다. 주민등록증 만들라고 동사무소로 경찰서로 불러 댔다. 우악스레 손을 잡아 잉크를 묻히고 종이에 눌러 댔다. 군대 가라며 신체 검사 받으라 불러 댔다. 필기 문제가 황당했다. 새벽 6시에 깨워서 연병장에 집합 시켰다. 시위한다고 잡아갔고, 벌금을 내라 했다.

국가는 일방적이었다. 나는 국가에게 길을 가다멈추라하지 않았다. ‘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라 가라하지 않았다. 국가는 내게 황당했다. 달콤한 새벽잠을 와장창 깨뜨렸다. 나는 국가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다. 국가는 일방적으로 날 원했다. 몽둥이루가스, 물대포, 욕설로 원했다. 국가는택시운전사를 오도 가도 못하게 붙들어 놓았고, 종철이 형을 때려 죽였다.

위대한 한민족의 국가가 이거 밖에 안된다면 문제의 원형은 프랑스 대혁명에서 찾을 수 있겠다. 계약할 수 있는 시민은 모두 큰 재산을 가진 남자로 제한되었다. 그들만 선거에 참여했고 무장할 수 있었다. 식민지를 그대로 유지했고 노예와 유색인도 계속 차별했다. 나중에 자코뱅이 이런 문제 중 많은 것을 해결하지만 집권은 짧았고, 반혁명은 혁명의 성과를 뒤로 돌렸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거기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해고로 답하고,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 악 쓰며 아직 거기 그대로 있다. 그래서 ... ‘너는 한국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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