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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사람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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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더러 청소를 하고 밥을 하라고 시킨 적이 있었나?  누가 나더러 책을 읽고 요가를 하는 일상을 유지하라고 했었나?

직장에 얽매이지 않은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지금의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으로 지내는 중이다.

누가 나더러 글을 쓰라고 했나? 설거지를 하다가 어떤 한 문장이 떠오른다. 얼른 물을 끄고 휴대폰 메모장에 떠오르는 것들을 메모해 둔다.

그런 메모들은 한 편의 글이 된다. 나만 보면 될 글들을 사람들에게 공유한다. ​

누가 시키지도 않은 침실 청소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뿌린 향(나는 청소 마지막에 항상 향을 뿌린다)이 코 끝을 스치자 떠오르는 사람.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멀리 해외에서 편지는 무슨 편지야!’하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많이도 했다 싶다.

애써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오지랖을 떨기도 하고, 굳이 궁금해하지도 않을 나의 과거를 친구들에게 읊어가며 그들을 내 과거로 불러 들이기도 했다.

같이 하면 좋을 일들을 ‘이건 꼭 다 함께 해야 해.’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케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마도 ‘굳이... 그렇게 까지...?’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먼 나라로 와서 그 간 나를 지나간 인연들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매주 편지를 쓰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떠오르는 한 사람을 두고 그 사람과의 기억을 중심으로 둘만의 키워드로 힌트를 주어 답장을 쓰도록 하는 편지다.

내 블로그에 공개하여 ‘나일까?’ 추측하게 하는 스무고개식 편지이다.

나름의 ‘함께 글쓰기’로 가는 첫 관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마음이 열리면 하기 싫은 일도 흔쾌히 하게 된다. 주고받은 편지는 한 편의 글이 된다. 글쓰기 합작을 한 셈이 되는 것이다.

‘우리 함께 글 써보자.’ 하고 시켰으면 알았다며 함께 했을까? 기억을 꺼내오는 작업,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 특정한 대상을 그리워하는 것.

이 모든 게 ‘편지’라서 가능하다. 편지는 누가 ‘시켜서’ 쓰는 글이 아니니까.

‘함께 글쓰기’는 아마도 쉽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로 계속 이어질 것 같다.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서...

주부로 지내는 삶은 다행한 삶일까? 직장에 얽메이지 않는 삶은 또 다른 책임을 갖게 한다.

학창 시절에도, 직장인 일 때도 늘 틀 밖으로 나갈 생각뿐이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라는 틀안에서 ‘책임’을 가지며 또한 자유도 누리고 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자유말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인연에,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최근 다시 읽은 ‘어린 왕자’에서 ‘책임지는 것’에 대한 대사가 눈에 띄었다. “넌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길들이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나는 책임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사랑’이라고 바꾸어 부르고 싶다.

책임은 막중한 임무 같지만 사랑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사랑하려 애쓰지 말고 너 자신이 사랑이 되어라.‘하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

내 곁의 한 ‘장미’를 지키는 책임으로 사랑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꾸준히 계속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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