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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투고

(생활글)내 이웃이 생겼다.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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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고 눈이 내린다는 뉴스는 봤지만, 돌풍이 이렇게 강하게 불지는 몰랐다. 밤새 잠을 뒤척이다가 7시 반에 일어났다. 먼저 멍멍이들이 잘 있는지 살펴봤다. 웅크리고 있는 큰개가 보인다. 나는 먹이를 들고 차에서 나갔다. 그러니 차 가까운 곳에 작은 개가 짖는다.

이렇게 추운데 잠은 잤어?” 나는 작은개에게 거리를 두고 단백질 큐브 3개 던져주고, 큰개는 바로 입 앞에 5개를 줬다. 그리고 다시 작은개 옆에 가서 큰 개 먹는 걸 확인하면서, 작은개 먹이를 더 줬다. 늙은 큰 개가 먹이를 잘 먹지 못한다. 그래서 작은개가 잘 뺏어 먹는다. 작은개가 자기 몫을 먼저 먹고, 큰개에게 가지 못하도록 작은개는 먹이를 던져서 거리를 둔다.

지난여름에는 신서귀포 월드컵경기장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살았다. 이번 겨울에는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성산성당 옆 주차장에서 살고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코로나19로 도서관이 문을 닫았을 때, 남편이 도서관 대신 이용하기 좋은 카페가 신서귀포에 있었고, 관광객이 적고 한산해서 신서귀포에 있었다. 지금은 도서관이 문을 열었고, 우리부부가 이용하다 보니 여기 성산일출도서관이 괜찮았다. 그래서 코로나19를 피해 이곳에서 겨울을 나기로 했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큰개와 작은개는 이곳 주차장에 살았다. 둘 다 백구다. 작은개가 믹스견이고 조금 작다. 작은개는 낯선 사람이 오면 낮게 짖는다. 큰개가 짖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우리를 경계하던 개들에게 처음에는 식당에서 남겨온 수육과 갈비를 줬다. 그러다 남편과 마트에서 장을 보며, 개 간식을 샀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개들과 이웃이 됐다. 작은개는 이제 내가 간식을 주지 않고 지나면 내 다리에 매달린다. 그렇다고 쉽게 사람의 손길을 허용하진 않는다. 알맞은 거리를 아는 개다.

한 달 넘게 지내다 보니, 우리 부부 뿐 아니라 이 개들을 이웃으로 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수녀님이 밤에 나와 밥을 챙겨주는 것을 봤고, 오후 산책을 나온 아주머니가 간식을 주는 것을 봤다. 어떤 할아버지는 비닐봉지에 먹을 걸 가져와 개들에게 줬다.

제제, 제제 이리와이름을 부르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가는 것도 봤다. 우리 부부가 걱정했던 개들에게 좋은 이웃이 있음을 알았고, 우리 부부도 개들의 이웃이 됐다. 내가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이웃이 바로 이 큰개와 작은개다. 그런데 둘 중 어떤 개가 제제인지는 두 달이 지난 지금도 모른다.

우리 부부의 일과는 매일 아침 뉴스공장을 듣고, 7시 반에 밤새 열어둔 오수밸브를 잠그러 나가서 개들에게 먹이를 준다. 그리고 9시 성산일출도서관에 가서 2시까지 책을 보거나 글을 쓰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는다. 집에 오는 길에 개들이 있으면 간식을 더 챙겨준다. 점심 후두 사람이 같이 산책을 한다. 남편이 악기연습을 하면, 나는 옆에서 휴대폰을 보거나 책을 본다. 저녁에 개들이 자기들이 왔다는 것을 알리면, 우리는 오수를 열면서 개들 간식을 챙겨준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개들의 이웃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본다.

전기충전과 급수 및 화장실 오수를 비우기 위해서 12일 정도 자리를 비울 때가 있다. 그러면 먼저 개들에게 충분히 간식을 주고 떠난다. 우리 부부가 외박하는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개들이 외박을 하고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다. 개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린다. 작은개의 짖는 소리가 나면 참 반갑다. ‘그래, 잘 놀다 돌아왔니?’ 창을 열어 개를 확인하면 꼬리를 흔들고 섰다. 어서 차 밖으로 나와 간식을 달라며 꼬리를 열심히 흔든다. 그러나 나가 손을 내밀면, 쉽게 몸을 내어주지 않고 뒷걸음을 친다. ‘나도 네 벼룩과 진드기 있는 몸을 만지고 싶지 않거든. 됐거든!’ 우리는 딱 서로의 거리를 안다. 그래서 좋은 이웃이다.

남편과 광치기 해변으로 산책을 나가면, 우리 쪽 백구 말고 흑구 두 마리가 돌아다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백구와 덩치가 비슷하지만, 흑구가 더 젊고 건강해 보인다. 다만, 흑구라서 좀 무서워 보인다. 떠돌이 개로 살기는 백구보다 더 힘들겠다. 광치지 해변 한 돼지고기 집,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이 이 두 마리 흑구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흑구가 관광객의 차를 돌아다니면서 나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살피는 모습을 봤다. 꼬리를 흔들다 내리는 모습이 짠하다. 우리 백구는 주차장 근처 말고는 산책을 나가서 본 적이 없다. ‘이 친구들은 낮에 어디서 뭘 하는 걸까?’ 나는 이 친구들과 이번 겨울을 나면 헤어질 걸 안다. 그래도 이번 겨울은 정말 잘 나면 좋겠다.

바람이 매섭게 불면서 눈도 많이 내린다. 나는 내 이웃 백구가 걱정된다. 안전안내문자가 많이 온다. 더 더욱 내 이웃들이 걱정된다. 백구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주 2공항 반대 노숙하시는 분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을 하시는 분들도 걱정이 된다. 우리부부는 멀리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단 하루라도 그분들과 같이 단식을 하려고 한다. 사람도 개들도 생명이 있는 모두들 이 겨울을 잘 나길 간절히 바란다. 나와 내 이웃의 평화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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