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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암으로 죽을 수 있다(3)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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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5일 수요일

민하가 밤에 잠꼬대를 심하게 해서 새벽 1시 전에 깼다. 민하는 낮에 오빠들에게 당한 걸 꿈에서도 똑같이 당하는 것 같다. 불쌍한 민하. 결국, 새벽 3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불안이 밀려왔다. 내 생각이 기우가 되길, 내가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해결할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나는 너무 무섭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안이 불면을 만든다. 오빠가 내 생각보다 더 짧은 생을 살 수도 있다는 불안이 제일 크다. 내가 도와주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불안했다. 30분 잠들었나?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 5시 반에 일어나 씻고 나오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혼자 조용히 수건에 얼굴을 박고 울었다. 일찍 터미널로 걸어 나왔다. 길에서 우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다.

나는 앞으로 내가 해결할 많은 일을 생각하면서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불안은 정확히 오늘 병원에서 오빠의 진단명을 듣고, 부모님께 전달하는 상황에 대한 것이다. 해맑은 오빠가 어떻게 반응을 할지도 걱정이지만, 부모님이 감당할 수 없을까봐 혹시나 부모님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을까봐 나는 엉엉 울었다. 어떻게 팔순 부모님께 당신 아들, 내 오빠가 암으로 죽을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 동생 전화가 왔다.

언니, 터미널까지 태워주려고 했는데 벌써 나갔네. 언니 울고 있어?”

부모님께 오늘 결과를 어떻게 전달할지 모르겠어. 엄마 보면 울까봐 인사도 안 드리고 나왔어. 정말 너무 무섭다.” 동생도 운다. 곧 어머니 전화가 왔다. 다행히 어머니와 통화는 울음이 섞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오늘 일 잘하고,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병원에서 오빠를 만났다. 오늘도 내시경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오빠 담당의사를 기다리겠다고 하니, 오빠 병실 간호사가 막무가내로 나보고 오빠와 같이 내시경실로 가라고 한다. 내시경실 대기실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내시경실 간호사에게 지금 여기 보호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내시경실 간호사는 입원환자는 보호자 필요 없다고 말한다. 다시 입원실로 가서 병실 간호사에게 내시경실 간호사의 말을 전했다. 병실 간호사는 간혹 내시경 받다가 의사가 부르는 경우도 있어 나를 보냈다고 한다. 나는 언제 올지 모르는 의사를 계속 기다리기에 너무 배가 고팠다. 식사를 하고 오겠다고 하고 휴대폰 번호를 남기고 갔다.

병원 매점에 컵라면을 먹고 오니, 오빠가 병실에 있다. 오빠와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오빠는 여전히 자신이 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사가 너무 안 와서 간호사에게 말하니 의사가 왔다갔다고 한다. 내가 어이없어 하니, 바로 전화로 의사를 호출한다. ‘아니 이렇게 호출하면 되는 거였어?’ 의사는 위암과 대장암을 의심한다고 했다. 위는 내시경 소견으로 암으로 보이나 조직검사 상 조금 다르게 나왔고, 대장에서도 암 조직이 나왔는데 이 암이 위암의 전위인지 아님 다른 성질의 암인지 더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검사를 했고, 이 검사 결과는 월요일에 알 수 있다고 한다. 우선은 오빠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니 막힌 위식도 부분을 뚫는 스텐트 삽입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빠는 나를 배웅하면서 여전히 해맑다. 내가 알기론 암통은 진짜 아픈데, 오빠는 계속 구토는 하면서도 아프지 않다고 한다. 출입구를 지키는 직장 동료들(경비)에게 스텐트 삽입에 대해 해맑게 이야기를 한다. 어쩜 사람이 이럴 수 있지.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병원을 나와 오빠 집에 갔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싱크대 누수를 방치하는 바람에 아래층 천장까지 누수가 진행이 됐다.(하필 아래층도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누수가 진행되는 걸 모르고 있다가 늦게 발견한 거다.) 싱크대 쪽만 잡으면 간단하게 해결되겠지만, 만약에 그쪽 누수가 아니면 일이 커진다. 무엇보다 집이 더럽다. 개미 같은 아주 작은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5살 안나는 아직 소변을 잘 보지 못해 침대에서도 실례를 한다. 나와 옆집 아주머니가 주변 수리기사를 섭외하고 일을 한다. 새언니 하는 말이 오빠에게 말해요. 안 고쳐요. 오빠는 몰라요.”. 진짜 화를 낼 뻔 했다. 5년 전, 왕솔이를 어린이 치과에 데려갔을 때랑 똑 같다. “오빠는 이런데 몰라요.”라고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오빠가 공장에서 주야 2교대 근무를 한다고요. 보통의 집안일은 부인이 해결할 수 있다고요. 당신은 한국에 이제 10년을 살았어요.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어요?’라고 속으로만 삭혔다.

천안 집에서 자기 싫어, 나는 홍성으로 갔다. 저녁에 오빠네 옆집 아주머니가 남편과 함께 싱크대 수리하러 갔는데, 새언니가 오빠가 퇴원하면 수리한다고 버티고 있다고 한다. 급하게 새언니에게 번역기를 돌려 오빠가 많이 아프다.’ ‘퇴원 못한다.’ ‘수술해야 한다.’고 톡을 보내고 빨리 수리 받아 라고 했다. 오빠도 오빠지만, 새언니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나는 천안 오기 전 결심을 했다.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가장 먼저 가까운 사람을 탓하고 원망하기 싶다는 것을 안다. 이제 연락을 하지 않고 사는 아버지 쪽 사람들이 그랬다. 그래서 더욱더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나 새언니에게 올라오는 나쁜 생각과 감정은 일단 모든 일이 다 해결될 때까지 참기로 했다. 나는 이 결심을 지키느라 정말 고생했다.

다음 날, 천안 오빠가 전화를 해서 난리를 친다. “왜 솔이 엄마에게 내가 많이 아프다는 쓸데없는 문자를 보냈어?” 오빠는 자기 말을 끊는 걸 아주 싫어한다. 오빠의 화난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오빠도 싱크네 누수 알았지? 그게 아래층 천창까지 물이 세고 난리가 났어. 어제 집수리해야 하는데 언니가 오빠 퇴원하면 한다고 해서 어떻게 해. 번역기 돌려서 급하게 톡하고 전화하고 했지.” 새언니가 병원 와서 울고불고 했단다.

오빠도 이제 본인이 암이란 걸 안다. 다만 오빠는 수술만 하면 되는 걸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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