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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벌 흑역사 (상) - 삼성, 현대 편 독후감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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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서모임에서 주제로 한국 재벌 흑역사(상)을 읽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책을 읽어보시면 어떨까 싶어 올립니다.

재벌들을 응징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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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읽다보니 삼성을 생각한다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중략)... 매출이 항상 국가예산 규모였다. 내가 재무팀에 가보니 그룹 시재(현금예금) 6.8, 천억 미만 버림이라고 돼 있었는데 단위가 조라고 했다. 68000억 원 이상이 현금으로 예금돼 있다는 뜻이다...’ (p.184)

 

전국 사업장에서 보고받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한 그룹 재무팀에서 작성한 데이터에 나와있는 자료를 보고 김용철 변호사가 했던 얘기였다.

천억 미만 버림.’

단 여섯 글자에 삼성이 가진 힘과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인지, 진정한 이 사회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지 드러나 버렸다. 이것보다 무섭고 절망적인 말이 있을까...

이병철의 삼성은 박정희를 만나면서 비로소 꽃피기 시작했다고 책은 말한다. 1980년생인 나는 1952, 55년에 태어난 나의 부모들로부터 어린시절 보릿고개얘기를 숱하게 듣고 자라야했다. ‘니가 보릿고개를 아느냐... 어디서 편식을 하느냐...’라는 식의...

책을 읽다가 참 아득해진 것은 이러한 구절이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선거 기간이 아니라 진짜로 민중들의 배가 주렸을 때, 최소한의 양이라도 적정한 가격으로 밀가루를 유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47)

 

나의 부모를 비롯한 절대 다수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그 혹한 시간들이 이병철에겐 독점자본의 기틀을 마련할 기회로 작용했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에 있는 대통령 박정희는 오로지 자신의 정권 재창출과 보수 표밭 다지기를 위해서만 자신의 권력을 휘둘렀고 독점자본이 시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을 방기했다. 아니 발벗고 나서서 도왔다.

만주 군관 학교 출신으로 독립군 토벌을 나가면 요시!(좋아!)”를 외치던 박정희에게 동료 의식이란 처음부터 없었겠지만 누군가에겐 목숨이 될 수도 있는 식량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던 이런 모습을 글로 읽으니, 우리 부모님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하셨나 싶어 서글프다 못해 가슴에 대못이 되어 꽂힌다.

 

 

#2

정몽준이 서울시장 후보 시절 개인 화장실까지 갖추어진 최신식 고시원을 방문하고 찍힌 멘붕 온 얼굴 사진이 생각난다. 2008년에도 버스비가 70원 쯤으로 알고 있는 그들과 나를 비교하여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문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의 원천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에 따른 권한의 크기이다.

노동조합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이병철과 그의 아들, 손자가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누리고 있는 그들의 부당한 권리를 말하고 싶다.

수조 원대 재산을 은닉하고 천억 단위 현금은 엑셀 파일에서 누락시켜도 되는 회사를 운영하는 그들에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외치며 자본에게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투쟁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보일까? 우리가 외치는 사랑, 정의, 진실, 연대 같은 말들은 또 어떻게 들릴까?

그들과 우리는 분명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다 각자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타협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린 위화감과 돈다발의 크기에 비례하는 권력의 크기를 누가 부여했는가 말이다.

헌법을 설계한 제헌의회 의원들이 그랬던가? 자국의 수십만 양민들을 학살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된 이승만이 그랬던가? 아니면 정의로운 삶을 살고자 했지만 패가망신하고 빨갱이로 낙인찍혀 거지꼴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그랬는가? 그 사람들을 외면한 우리 모두의 결과가 그리 했는가?

참여정부 때 한미FTA 통상교섭본부장을 맡다가 20093월 공직자윤리법에 저촉됨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법무팀 사장으로 영입됐던 김현종.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게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을 생각한다, 133)

 

그는 현재 문재인 정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하고 국가안보실 제2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자본은 정말로 무한한가?

 

 

#3

20101124. 날은 추웠지만 햇빛은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울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이 공장점거 투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로 본 지도 열흘 쯤 지났던 것 같다. 뭔 생각으로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무조건 가야겠다, 가서 공장 앞 집회에 쪽수라도 채워줘야겠단 생각은 확실히 하고 있었다.

조퇴를 내고 부산 개금 백병원에서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공장까지 버스로 지하철로 다시 버스를 탔다. 430분쯤 이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공장 외벽에 붙어있던 구호가 집채만 한 크기와 내용 탓에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떠오른다.

 

품질은 우리의 자존심이다

웃프다는 말로도 다 못 전할 역겹게 웃기고 슬픈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되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자동차와 그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서로 소위 자신들의 품질을 두고 경쟁하는 기가 막힌 이 상황에 기가 막히게도 어울리는 저 문구는 그래서 너무나, 너무나 이상하였다. 노동자를 저 따위로 대하면서 저런 문구를 버젓이 붙여놓았던 그 뻔뻔함과 우악스러움이 글자의 크기만큼 나를 더욱 옥죄는 기분이었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이상한 선전 선동 말이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지는 힘!)

 

나의 상식으로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않으면 물건도 개판이 될텐데... 그러다, 문득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 저들에게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람이 아니겠구나. 그야말로 쓰고 버리는 부품이겠구나. 일회용 소모품을 정성들여 쓸고 닦고 관리하는 사람은 없잖아... 바닥에 잠깐 떨어져도 버리고 새로 뜯어서 쓰는 게 일회용 나무젓가락인데 말이다.’

 

집회 시간까지 1시간이 남아 기다릴 겸 공장 건너편 뒷산에 올라갔더니 저 글자가 더 큼직하게 잘 보인다. 맥주 1캔을 마셨는데도 느물거리는 속을 달래느라 담배를 얼마나 폈는지 모르겠다.

투쟁사업장 집회에 혼자 참여해보기는 처음이라 520분쯤부터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정시가 되니 1초도 지체없이 시작하였다. 늘 듣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그 날만큼 가슴을 울린 적도 없으리라. 문화 행사는 하나도 없이 지회장, 연대시민단체 대표 발언 하나씩 하고 바로 규탄대회였다.

1124. 이미 공장을 점거한지 10일이 되가는 상황이었으며 그 며칠 전부터 사측에서 전기와 수도도 끊어버린 상태였다. 물과 김밥 반입마저 구사대와 용역들이 막는 상황이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오도가도 못하게 갇혀버렸다.

아내들이 나와서 발언을 한다.

물 없으면 오줌이라도 받아 먹고 버텨라. 절대 나오지 마라. 감옥에 가도 좋다. 애는 내가 키운다. 비정규직 끝장 내기 전에 절대 나오지 말고 버텨라.”

말을 하는 아내들도 악에 받쳐 눈물을 흘리고 앉아 있던 사람들도 여기저기 흐느낀다. 마지막 발언을 했던 세 살, 다섯 살 개구쟁이 아들을 둔 어떤 아내의 쟁쟁한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다! 비정규직 끝장내자!”

 

집회는 딱 1시간 만에 끝이 났고 용역과 몸싸움 끝에 겨우 생수 몇 박스와 김밥 몇 통을 공장 안에 넣어줄 수 있었다. 그래놓고 우리는 헤어졌다. 양산가는 버스까지 2시간 정도가 남았다. 바로 근처의 술집에 가면 집회 끝난 분들이 혹시나 올까 봐 좀 멀리 떨어진 곳에 허름한 술집에 들어가 소주 1병을 시켰다.

기륭전자 노조에서 발행한 사진집 여기, 사람이 있다를 보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겨울 한파가 몰아치기 시작한 11월 말경에 이불 하나 없이 온통 철로 둘러 쌓인 공장에서 담을 사이에 두고 남편은 비닐잠을 자고 아내들은 길바닥에서 잠자리를 펼치는 현대판 견우와 직녀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뉴스로만 듣고 머리로만 생각하던 비정규직의 비참한 현실을 눈으로 직접 보고 들으니 그 현실이 감당 안 돼서 였을까?

양산에 있는 선배 집까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눈이 팅팅 불어 터질 만큼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다는 듯이. 쪽팔린 지도 모른 채.

 

 

이 책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나라에 살고 있나싶은 생각에 사람을 참 절망스럽게 만든다. 그래도 이완배 기자라서 그나마 가독성 있게 이 정도 쓴 게 아닐까 싶다. 그도 이 책을 쓰면서 참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스러웠을까...

그래도 이 책이 꾸준히 유통되고 읽히면 좋겠다. 그래서 재벌들이 얼마나 대한민국의 거대한 악인지, 이 악들을 우리는 어떻게 물리쳐야 하는지들을 논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권력을 넘어서서 우리 삶의 양식을 지배하고 있는 이 자본주의 체제 역시 언젠가는 그 수명을 다 하고 폐기될 것이다. 그 때까지 우리의 삶은 여전히 싱싱하고 아름답게 이어질 것이다.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를 거부하고 벗어나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굴리는 수레바퀴의 부품이 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정신승리로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사랑과 더 많은 정의와 진짜 더 절실한 연대뿐이다.

우리끼리 아픈 건 고만하고 저놈들이 벼랑에 몰리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런 상상을 해본다. 기업의 오너 자리를 유지하고 살아남기 위해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농성중인 노조 천막에 들어와 진실된 마음으로 무릎꿇고 사과를 하는 이재용과 정의선의 모습을 꿈꿔본다. 안다. 지구가 멸망하는 게 더 빠르다는 걸.

10,000원이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곳에 후원할 수 있다. 커피 2잔 값이거나 담배 2갑 값이다. 가랑비에 옷 젖고 그러다가 바위도 깨고 한다더라.

  • 작은책 선생님 안녕하세요. 김현종 씨가 삼성 법무팀에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네요. 천억미만은 버림.. 그리고 대비되는 비정규직의 아우성. 정교사로 비정규직 현장에 함께 하는 분들은 극소수인데 선생님 정말 존경합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세상 어디 한 구석은 바뀌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귀한 글 고맙습니다. 2019-07-12 19:04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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