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독자 투고

내 편이었던 당신을 기억하며.

권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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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었던 당신을 기억하며>

반나절, 친구들과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놀고

가족들과 가진 간만의 외식자리에서 고기반찬을 먹고 소주를 몇잔 얻어마시고

알딸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켜니, 문득, 한 머릿기사에 눈에 들어왔다.

‘9회말 역전만루홈런은 끝내 터지지 않았다.’ 클릭해보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그 사람 이야기구나.

그러니까, 얼마 전, 급성 뇌출혈로 쓰러진 달빛요정만루홈런이라는 예명을 쓰던 한 인디가수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토막잠처럼 짧은 투명이었다.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그는 병원비가 모자라 팬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모금이 이루어 질만큼 가난했고, 그래서 언제나 가난한 노래만을 부르던 뮤지션이었다.

지금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제목은 슬픔은 나의 힘. 정말 그랬다. 그는 퍽퍽한 세상에 슬픔을 말아 억지로 입안에 우겨넣던 사람이었다. 솔직히 내가 그의 팬이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음악을 좋아하는 친한 친구의 추천으로 1집 앨범과 그 외의 몇몇 노래들을 즐겨들었을 뿐이다. 스끼다시 내 인생, 절룩거리네, 361타고 집에 간다, 등등… 제목만 봐도 짐작하겠지만, 그의 노래는 대부분 인생에 대한 쓴 자조를 담고 있었다. 그의 노래를 듣던 시절, 지금보다도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세상이 그리 녹록치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전해준 예감은 서서히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음악계의 박민규라고 해도 무방하다. 혹은 박민규가 문학계의 달빛요정만루홈런이거나. 하여튼 간에 그 둘은 무척이나 닮은 구석이 있다. 그들의 화두는 언제나 자본주의와 승자독식이라는, 이제 조금은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그렇기에 더더욱 빠른 속도로 우리들의 마음속을 검게 물들이고 있는 불합리한 세상의 체계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나, 박민규나, 언제나 그런 세상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흔한 시사비평가들처럼 멀리서 관조하거나 냉소적인 비판을 쏟아붓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돈만이 우선인 세상, 가진 자만이 ‘살만한’ 인생을 누릴 수 있는 그런 불합리한 세상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무기력한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쓰거나, 흥얼거렸다. 동시에 그들이 그런 무기력한 개인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달빛요정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혹자는 떠나간 그를 “버려지고 절망한 자들의 엄지손가락이었다.”고 추억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정말 그랬다. 그가 느꼈던 퍽퍽한 세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말아 억지로 구겨 넣을 수밖에 없는 구질구질한 인생은 결국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했다.

내 발모가지 분지르고 월드컵코리아

내 손모가지 잘라내고 박찬호 이십승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미친 게 아니라면.

절룩거리네, 절룩거리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절룩거리네> 中

우석훈이 청년 세대를 두고서 88만원 세대라고 했던가? 아니, 한 신문기사를 보니 이제는 88만원이 아니라, 77만원이라고도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청년 세대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포함한 국민들 대다수가 녹록치 못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그 실례로, 얼마 전, 삼성반도체 온양 공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하던 박지연 씨는 백혈병에 걸린 채로 시름시름 앓다가,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숨을 거두지 않았던가.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을 업신여기는 세상에서, 아니 오히려 가진 자들이 더 가지기 위해서 못 가진 자들을 피 말리는 세상에서, 우리 대부분은 달빛요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한 개인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누군가는 위로를 받는다. 나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또 있었구나. 다가올 내일이 두려워 잠 못 이루는 밤, 하릴없이 뒤척이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겠구나. 나의 가난과, 나의 슬픔과, 나의 고통은,

모두의 것이구나.

얼마 전 인디문화에 붐을 일으켰던 장기하와 얼굴들을 상기해보자. 그들은 정말 싸구려 커피를 먹은 적이 있었는가? 혹은 지금도, 먹고 있는 중인가? 노정태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두고 ‘일종의 루저-되기’라고 평한 바 있다. 그리고 그런 평은 정확하다. 달빛요정은 어떤가? 그는 자신의 앨범 한 장을 팔아치우기 위해서 절룩거리는 ‘척’던 것일까? 이 지점에서 달빛요정은 장기하와도 박민규와도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그는 진정 가난했고, 그래서 병원비도 제대로 청구하지 못했고, 주위 사람들이 긁어모은 한줌도 못되는 돈, 그 놈의 돈으로 토막잠같이 짧은 투병생활을 했고, 결국 오늘 죽었다. 쓸쓸한 죽음이었다. 나는 그의 죽음이 조금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 우리 모두의

쓸쓸한 죽음이었으면 한다. 그의 작은 위로가 누군가의 떨고 있는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듯이. 그의 흥얼거림이, 탄식이, 자조가 종종 철없던 나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듯이. 그는 우리와 ‘같은 편’이 아니었던가.

오늘은 실컷 담배를 피울 테다. 나는 정말 못난 놈이다. 개새끼다. 공연히 그런 마음이 든다. 그리고

요정은 갔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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