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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들이 온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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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감옥에서 온 편지(5)

 


용역들이 온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가난의 도시》 저자

 

 

도대체 무슨 죄를 졌기에 감옥에 갇혔을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사건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몇 가지 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서울 강남구청에서 고용한 용역반이 몰려들어 거기에서 장사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노점상을 단속한 사건입니다. 한겨울이었습니다. 거리에는 캐럴이 흘러나오고 간간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울려 퍼졌습니다. 백여 명이 넘는 건장한 체격의 용역들이 떡볶이, 어묵 그리고 겨울철 간식인 붕어빵과 군고구마와 공산품을 파는 노점상 마차와 손수레를 마구잡이로 들어올려 아스팔트 위로 내동댕이치거나 뒤집어엎었습니다. 떡볶이와 어묵 국물이 도로 위에 흩어지고 노점상은 바닥에 앉아 울부짖었습니다.

 

2014년 2월 19일 강남구청 용역깡패들이 행정대집행이란 명분으로 포장마차를 쓸어간 자리. 상인이 울고 있다. 사진_ 최인기

 

강남구청은 2014년 10월 17일 새벽에 용역깡패를 고용해 또다시 폭력적으로 철거했다. 이날은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이었다. 사진_ 최인기

 

하지만 용역들은 더 신이 났는지 단속을 말리는 상인과 시민에게 “저리 비켜 XX놈아, 다 치워!”라며 욕을 퍼부었습니다(유튜브에서 ‘강남 노점상’과 ‘용역 깡패’를 검색해 보면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단속을 하루 두 차례씩, 오전과 오후에 반복적으로 받았습니다.

 

노점상들은 사전에 갈등이 빚어질 것을 예상하고, 강남구청을 찾아가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대신 생계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해 달라며 하소연했습니다. 처음엔 다행히 강남구청 측과 합의가 되었습니다. 강남대로 변 장사를 접고 소위 ‘여명길’이라고 불리는 뒷길 이면도로에서 장사를 하면 묵인해 준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명길 차량을 통제하고 보행자 전용도로를 조성해 주고, 다른 구청에서 노점상 대책 마련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살피고 모색하겠다는 약속까지 하였습니다. 이는 주변 상가도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점상은 오랫동안 장사하던 강남대로 변에서 여명길로 터전을 옮겨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수입은 예전만 못했지만 잠시 단속에서 해방된다는 안도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바뀌자 단속이 시작된 것입니다. 과태료와 단속에 시달리던 노점상들은 차라리 이럴 바엔 원래 장사하던 강남대로 변으로 이동해 장사하자고 결의를 하였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판단 아래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이미 강남구청은 2013년부터 26개의 노점상을 정리하는 내용으로 ‘불법 노점 특별 정비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10여 년 전 강남 거리는 분주히 오가는 사람으로 북적였습니다. 연말을 앞두고 가족 나들이로 보이는 시민들과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자 누군가 호각을 불며 “몰려온다! 용역들이 온다!” 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외쳐 댔습니다. 커다란 덩치의 젊은 남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포장마차를 부수기 위한 손잡이 달린 망치와 쇠 파이프가 쥐어져 있었고, 어떤 이에게는 날카로운 커터 칼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뒤로 ‘공무수행 중’이란 트럭 몇 대와 견인차들이 뒤따랐습니다. 강남구청 공무원들도 핸드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시민들이 퇴근할 무렵이었습니다. 보통 한겨울,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단속을 하지 않는 게 상식이지만 이곳에서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상인들은 손수레를 접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 상인은 “돈부터 챙겨!”라고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아수라장에서 하루 벌어들인 돈과 지갑과 개인 물건을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순식간에 포장마차와 좌판이 건장한 용역들에 들려 견인 차량 위로 실리자 상인들은 포장마차 바퀴와 좌판 끄트머리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어떤 상인은 견인차 안으로 기어 들어가 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온몸으로 막았습니다. 운전기사가 이를 알아채지 못하면 인명 사고로 이어질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쇠사슬로 온몸을 칭칭 감고 생계 수단인 손수레에 묶어, 분신이라도 되는 듯 뺏기지 않으려 울부짖었습니다.

 

퇴근길 시민들은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어처구니없는 소동에 갈 길을 멈추고 “너무 심하다”며 경찰과 구청 직원에 항의했습니다. 강남대로의 차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져 교통체증으로 이어졌습니다. 경찰차와 ‘공무수행 중’이란 문구가 적힌 구청 차 그리고 일반 차량이 뒤섞여 클랙슨 소리가 건물 사이로 울려 퍼졌습니다. 노점상들은 단속으로 생존권이 처참하게 유린당한 채 나뒹굴었습니다. 어떤 언론과 방송에서는 “이들은 고수익을 올리는 노점상”이라며 “국제적인 도시 강남에 노점상이 웬말이냐.” 하고 한국의 민낯이라 떠들었습니다.

 

재판은 약 3년 가까이 끌었습니다. 강아지 옷을 파는 노점상 할머니는 “강남이 커다란 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지금까지 장사하며, 아픈 남편과 함께 생계를 유지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날의 단속으로 얼굴이 찢겨 피투성이가 되었던 할머니입니다. 떡볶이 노점상 할머니도 ‘아무리 거리에서 장사한다 해도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딨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법정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구청의 대화 거절, 합의 파기, 그리고 일방적인 단속 등의 피해를 입고 불가피하게 저항했던 사건입니다. 아쉽게도 6명이 1심에서 법정 구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항소심을 거쳐 12월 14일 상고심 재판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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