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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어느 ‘어공’의 지방의회 분투기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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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생활글 공모전 수상작
우수상


어느 ‘어공’의 지방의회 분투기

이일우

 


 나는 지방의회에서 임기제 전문위원으로 8년간 일했다. 구의회 두 곳에서 7년, 시의회에서 1년가량을 근무했다. 외유성 해외연수와 같은 언론보도만 보면 늘 한가하고 좋아 보이지만 지방의회도 다른 직장과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노동 약자의 서러움을 피할 수 없는 곳이다.

 

서울시 서대문구의회 모습. (본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 갈무리_ 서대문구의회 홈페이지)

 

 지방의회에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조례안이나 예산안 등을 조사·검토하는 사람을 ‘전문위원’이라고 한다. 전문위원은 선발 과정과 특성에 따라 임기제 공무원, 행정직 공무원, 별정직 공무원으로 나뉜다. 전국 시·군·구 의회 전문위원의 대부분은 행정직이나 별정직 공무원이고 이들은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소위 ‘늘공(늘 공무원)’이다. 별정직은 2년 내외마다 보직을 바꾸는 순환보직 대상이 아니고 비서직, 전문위원 등과 같은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는 점이 행정직과 다르다. 임기제 공무원은 쉽게 말해서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다. 일정 요건을 갖추고 서류 전형과 면접시험에 합격하면 2년이나 3년 임기로 임용하는 엄연한 공무원 신분이고 범죄에 연루되거나 업무 성과가 계속 저조하지 않은 한 근로계약은 연장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어공 전문위원이 2년에 한 번씩 근로계약을 연장하려면 지방의회 의원보다 평소에 의회사무국장이나 늘공 전문위원에게 밉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의원의 의정활동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어공 전문위원이 주민의 대표가 아닌 늘공의 눈치를 봐야 한다니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구의회에서 근무한 지 3년쯤 됐을 때 의회사무국 정 씨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내게 말했다.

 “김 전문위원의 계약을 해지하자는 말이 구청 간부들 사이에서 진작부터 있었어요. 직원들의 일이 많아져서 힘들다고 구청에서 난리였거든. 계약을 연장하려면 전문위원이 구청과 원만히 지내야 하는데….” 

 “예? 정말이요?”

 김 전문위원은 그 구의회에서 1년 6개월쯤 일하다 계약 해지 전에 다른 지방의회로 이직한 내 전임자였다. 3명의 전문위원이 모두 행정직이던 의회사무국에서 최초로 혼자 임기제 전문위원으로 채용되어 다수의 구의원으로부터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았던 김 전문위원이다. 당시 여러 구의원과 직원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구청장이 구의회에 제출하는 조례나 예산을 김 전문위원은 행정직 전문위원과 비교될 정도로 워낙 탁월하게 검토하는 바람에 구청의 늘공과 크고 작은 갈등이 많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김 전문위원의 성격이나 대인관계가 몹시 이상했다거나 특이했다는 말은 없었다. 구의회 입장에서 유능하게 일해도 늘공을 부담스럽게 하면 구청 간부의 뜻대로 어공 전문위원을 자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혔다. 
9급 또는 7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하고 똑같은 구청이나 군청, 시청에서 20년 이상을 근무한 늘공에게 지방의회에서 일하는 김 전문위원이나 나 같은 어공 전문위원은 갑자기 ‘굴러온 돌’과 같은 생뚱맞은 존재일 수 있다.

 

 지방의회가 시청이나 구청, 군청의 행정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기관이다 보니 늘공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감시하는 지방의원을 곁에서 돕는 어공 전문위원이 이뻐 보일 리가 없다.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2022년 1월 시행되면서 의회 사무기구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이 형식적으로는 구청장으로부터 지방의회 의장한테 넘어갔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구청장이나 시장, 군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주민 인구가 32만 명 내외인 서울시 A구의 구청장은 대략 1200명 내외의 공무원 조직을 거느린다. 인구수와 동(洞)의 개수 등에 따라 A구의회의 구의원은 15명 내외이고 의회사무국은 30명 내외의 직원으로 구성된다. 게다가 운전직, 방호직, 비서직, 속기직, 사진사 등의 직원을 제외하면 A구의회 사무국에서 구의원을 정책적으로 보좌할 수 있는 직원은 전문위원 3명(5급 2명, 6급 1명)과 의원 2명당 1명씩 배정된 정책 지원 인력이 전부이다. 구청장과 지방의회 의원의 보좌 인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교 자체가 무색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의정활동 경험이 적은 ‘해맑은’ 초선 구의원은 임기 초중반이 지나도록 20~30년 경력의 늘공에게 휘둘리기 쉽다. 예를 들면 구의원이 주민들의 요구로 어떤 조례를 만들고 싶을 때 구청의 담당 부서 직원은 그 조례가 불필요한 이유부터 설명하기 일쑤다. 새로운 조례가 제정되면 그 조례를 근거로 소관 부서의 법적 책임이나 의무가 명확해지기 때문에 부서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안 하던 일이 새로 생기는 거니까 방어적일 수밖에. 늘공 전문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구청 부서의 입장을 두둔하거나 아예 뒤로 빠져서 관망하곤 했다. 어차피 의원을 두둔하자니 ‘구의회로 가더니 사람이 변했다’는 구청 동료나 후배 직원의 핀잔과 비아냥을 들을 테고 무조건 부서의 입장만 두둔하면 그 의원에게 찍힐 것 같으니까.

 

 이런 현실에서 구의회의 위상을 높인다며 감히(?) 구청장이 제출한 조례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던 나는 그야말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다. 여러 해가 바뀌어도 지방의회 업무를 대하는 늘공과 나의 관점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차이는 점점 분명해졌다. 정년 퇴임을 7∼8개월쯤 앞둔 어느 행정직 전문위원이 내게 던진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정년 퇴임 때까지 구의회에 계시는데 그동안은 구청보다 구의회 입장에서 일하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이일우 전문위원님, 까놓고 말해서 내가 퇴직하면 누구랑 술을 더 마실 것 같아요? 구의원들? 아니죠. 구청에 있는 직원들이지요.”

 

 그 행정직 전문위원은 구청에서 과장으로 있다가 정년 퇴임을 1년 6개월 남겨두고 구의회 전문위원으로 발령을 받은 상황이었다. 아무리 말년(?)이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골적으로 구청 입장을 두둔하는 그가 나는 몹시 불편했다. 한참을 고민했던 나는 이곳에 있는 동안만큼은 구의회 입장에서 일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어렵게 꺼냈고 그러자 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내게 대꾸한 것이다. 물론 전국의 모든 늘공 전문위원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의 구의회 전문위원은 늘공이 다수이면서 어공이 일부 섞여 있는데 군의회와 시의회 전문위원은 대부분 늘공일 가능성이 크다. 오랜 기간 행정직 공무원이 차지한 의회 사무기구의 5급 승진 자리를 임기제 공무원에게 쉽게 내줄 리 없기 때문이다. 지방의회가 진정으로 주민들의 눈높이로 바뀌길 원하는가? 내가 사는 동네의 구의원과 시의원의 이름을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유권자인 주민이 자세히 보고 오래 봐야 지방의회가 바뀔 수 있다.

 

 

 수상 소감 ∞∞∞∞∞∞∞∞∞∞∞∞∞∞∞∞∞∞∞∞∞∞∞∞∞∞∞∞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지난 10월 글쓰기 수업 합평 때 “어느 ‘어공’의 지방의회 분투기” 초안에 대한 어떤 수강생의 말이었습니다. 합평 수업이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아니, 이 정도가 어렵다고?’라는 말이 제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지방의회 전문위원은 의회 입장에서 지방의원과 공무원만을 통역해 주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정작 주민을 놓친 것만 같았습니다. 주민들이 지방의회에 너무 무관심한 현실이 못마땅하다며 《나는 지방의회에서 일한다》라는 책까지 출간했는데 괜히 머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훅 들어온 수상 통보의 말이 여전히 믿기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부족한 글을 좋게 봐 주신 심사위원님과 <작은책>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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