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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을게요. 고 김동호 님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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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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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을게요. 고 김동호 님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인노무사

 

2023년 6월 20일, 건설노조 노동안전 담당자들과 회의를 마치고 뒤풀이 장소에서 처음 당신의 소식을 들었어요. 마트산업노동조합의 정준모 국장이 서비스연맹 정하나 국장에게 보낸 ‘(코스트코)하남점 관련 상황 보고’라는 긴 문자였어요. 서비스연맹 노동안전자문위원 자문방에 사건 상황과 함께 정하나 국장은 ‘폐색전증의 직업적 요인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알려 달라’고 했어요. 다음 날 저는 “어제는 다른 회의가 있어 자세하게는 못 봤는데, 다시 보고 생각해 보니 31세의 카트 정리 업무, 기저질환이 없다면 저는 산재로 보고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조 입장도 그렇게 정리되어야 하고요. 아무런 기저질환도 없는 젊은 노동자가 육체적 강도가 매우 심한 노동을 했다고 한다면, 고용노동부 과로 기준에는 미치지 못할지 모르지만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배제된다고 ‘면밀한 조사 없이’ 단정하는 건 위험한 것 같아요. 오래전 제가 공단에서 인정받았던 건도 물론 과로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스트레스’가 매우 높았었고, 장시간 좌식 업무라는 점이 악화 요인으로 인정되었었어요. 암튼 참고하세요.”라고 남겼어요. 이후 노동조합은 국회 기자회견 등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2023년 7월 3일 MBC 보도 등을 통해 세상에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졌어요. 그리고 가족들은 산재 신청을 위해 노무사 추천을 원했고, 노동조합에서 저를 추천해서 담당하게 되었어요.

 

가족들과 처음 만난 건 2023년 7월 6일이었고 당신의 고모님 댁이었어요. 부모님과 고모님 부부, 그리고 당신의 형을 처음 만나서 여러 얘기를 나눴어요. 초기 회사에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아 담당 의사 선생님이 부검을 하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고 얘기했어요. 그리고 6월 5일 주차 관리 요원으로 배치된 이후 그 힘든 업무와 업무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셨어요. 고모님이 직접 주차장의 배치도를 그려 가며 공기 순환이 안 되어 열기가 더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어요. 급작스런 죽음 이후 고모님이 당신의 죽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특히 더 많이 노력했더라고요. 그때부터 잠을 잘 못 잤다고 하면서요. 국민신문고에 진정서를 내고, 아버님과 같이 노동청을 뛰어다녔지요. 상담 말미에 당신의 어머니께서는 “우리 동호….”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고, “둘째지만 정말 장남 같은 아들이었다.”라는 말도 덧붙였어요. 당신이 월급을 받으면 집안을 위해 매월 생활비를 아끼지 않고 보탰다고 하면서요.

 

돌아와 생각해 보니 이 사건은 기존에 제가 수행했던 과로 스트레스 및 장시간 좌석으로 인한 “폐색전증 사망”과는 달랐어요. 또한 발목이 다쳐 장기간 고정 자세로 움직임이 제한되었던 기존 사건과도 큰 차이가 있었어요.

 

2023년 8월 2일 열린 혹서기 코스트코 카트노동자 사망 49재 추모집회. 사진 제공_ 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

 

실마리는 당신을 마지막까지 살리기 위해 2시간이 넘게 고군분투했던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주셨어요. 선생님도 처음에는 사안을 몰라 폐색전증으로만 사망진단서를 작성했어요. 이후 폭염 상황(최고기온 6월 17일 32.1도, 6월 18일 33.3도, 6월 19일 35.2도) 속에서 20킬로그램이 넘는 카트를 20개씩 움직이며 각 43712보(26.42킬로미터), 36658보(22.01킬로미터), 29107보(17.36킬로미터)를 이동하면서 힘들게 일했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가) 직접사인 : 폐색전증, (나) : (가)의 원인 : 과도한 탈수, (다) : (나)의 원인 : 온열”로 사망진단서를 변경 발급했어요. 가족들과 면담할 때 선생님이 조력해 줄 수 있다고 해서, 제가 연락해 보았어요. 선생님께서는 “폐색전증 사인의 의학적 병리 등”에 대해 제가 질의하는 내용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논문을 찾아가며 소견을 작성해 주었어요. 그 내용을 보니, 당신의 사망은 질병사가 아닌 외인사이며,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고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수차례 전화 통화에서 살리지 못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났어요. 어쩌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응급실에서 죽어 가는 사람을 볼 텐데,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당신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어요. 임상의사 선생님의 소견은 구비되었고, 직업환경의학적으로도 이 사건에 대해 소견서가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페이스북에 류현철 선생님이 당신의 사망은 철인삼종경기 선수 등 현저히 장시간 근력을 소모하는 운동선수에게 발생할 수 있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류현철 선생님에게 정리한 자료를 드리고, 업무 관련성 평가서를 부탁드렸어요. 8월 22일 노동조합과 함께 산재 신청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는데, 전날 새벽까지 열심히 작성해서 제게 주었어요. 마트산업노동조합 활동가들과 코스트코지회 간부들 그리고 서비스연맹 활동가들 모두 열심히 싸웠어요. 어쩌면 당신의 사건이 사회적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노동조합이었어요. 저는 단지 당신의 가족들과 좋은 선생님들, 그리고 노동조합의 힘들을 잘 연결시키는 조력자일 뿐이었어요. 8월 22일 산재 신청을 한 이후 근로복지공단과의 대응은 오롯이 저의 몫이었지만 당신의 형인 김동준 님이 열심히 도와줬어요. 9월 13일 공단의 현장 실사에도 함께했고, 불성실한 회사 관계자와 소리 높여 싸우기도 했어요. 10월 12일 국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서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요.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산재 사건을 하면서 가족들이 다시 슬퍼하는 일 중 하나는 산재 승인을 받는 날이지요. 지난 10월 31일 근로복지공단은 당신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는 통지를 했어요. 공단이 우리 주장을 받아들여 질병사가 아닌 온열질환의 재해라는 사실을 인정했던 것이지요. 저는 그 즉시 당신의 아버지에게 알렸어요. 비통한 마음에 잠시 말을 잃었고, 그 슬픔의 깊이는 저는 도저히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제는 모두 당신을 잊을지도 몰라요. 가족들은 당신의 안타까운 죽음이 산재 승인으로 끝나서 모두 잊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워해요. 수십 개의 언론에 산재 승인 사실이 보도된 이후 가족의 슬픔은 끝난 것 같지만, 서른 살 아들을 잃은 부모님, 형과 동생을 잃은 형제들, 사랑하는 조카를 잃은 고모님 등 가족의 고통은 아마 평생 계속될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고 또한 잊히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해요. 당신의 죽음이 인력 부족과 휴식 부족, 그리로 폭염 속 안전조치가 미흡했기 때문에 발생한 구조적 재해라는 점을 반드시 세세하게 다시 기록해야 해요. 이제 다시 싸움이 시작될지 몰라요. 공단이 아닌 코스트코 자본과의 싸움이죠. 누구나 죽을 수 있는 이 ‘산재공화국’에서 운 좋게 남겨진 우리가 다시 싸우도록 할 테니 하늘나라에서 아픔과 고통을 이제 내려놓으세요. 다시 한번 당신의 명복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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