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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도 사람이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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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온 소식

 

경비원도 사람이다

박현수/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서울본부 조직부장

 


2023년 3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 청소노동자와 경비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3월 8일에는 관리소장으로부터 강제적인 해고 통보를 당한 남성 미화원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3월 14일, 오전 7시 40분경에 경비원 한 명이 자신이 근무하던 아파트 9층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투신자살한 경비원은 유서에 “A조 ○○○(본인)을 죽음으로 끌고 가는 관리소장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라고 남겨 놓았다. 동료 경비원들에 의하면 돌아가신 경비원은 선경아파트에서 11년을 근무한 경비반장(앞으로 고인이라고 표현)이었다. 하지만 부임한 지 4개월도 되지 않은 신임 관리소장이 수시로 괴롭혔다고 한다. 군 출신인 관리소장은 관리사무소 아침 회의를 할 때마다 다른 젊은 관리소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고인에게 복명복창을 강요했다. 그날 해야 할 업무에 대해 군대처럼 복명복창을 하도록 했다.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칠십 넘은 노인이 젊은 직원들 앞에서 이등병처럼 복명복창을 하려니 극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관리소장과 고인은 소속된 업체가 달랐다. 한마디로 말해서 관리소장이 고인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은 없던 것이다. 그래도 복명복창식의 괴롭힘은 지속되었고, 신입 경비원이 새해에 경보기를 오작동한 것을 트집 잡아 고인의 직위를 강제로 해제시켰다. 고인은 반장에서 강제 직위 해제 되고 나서 일주일 만에 돌아가신 것이었다.

 

매주 화요일 민주일반노조와 대치동 선경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관리소장 퇴출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길재 경비대장이 피켓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사진 제공_ 전국민주일반노조

 

이에 분노한 경비원들은 이길재 경비대장을 중심으로 관리소장 퇴출 투쟁을 진행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3월 15일부터 집단행동을 시작했고 언론에서 수차례 다뤄졌다. 3월 21일 이후에는 관리소장이 보이지 않았다. 언론에도 관리소장은 해임되었고 3개월 근로계약도 1년으로 회복되었다고 보도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관리소장은 잠시 몸을 피하기 위해 유급휴가를 간 것뿐이었다. 4월 초가 되자 관리소장은 다시 선경아파트로 출근했고 3개월 근로계약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쫓겨난 것은 동료의 죽음을 알리고자 했던 이길재 경비대장이었다. 경비대장은 3월 30일에 민주노총 민주일반노조를 찾아왔고 가입하여 함께 투쟁을 시작했다.

 

 

대치동 선경아파트 단지 내에 걸린 현수막. 사진 제공_ 전국민주일반노조

 

입대의(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소장은 악랄했다. 관리소장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 이길재 경비대장이 유서를 대필했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식으로 주민들에게 거짓말을 유포했다. 그리고 경비원들에게 민주노총에 가입한 자를 색출해서 해고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경비대장과 경비원들은 굴복하지 않고 민주일반노조와 함께 투쟁했다. 현장에서 앞장서던 경비원 한 명도 노조와 함께 현수막을 설치했다는 이유로 초소 강제 이동을 당했다. 경비원에게 초소 강제 이동을 하라는 것은 그만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초소 강제 이동을 당한 경비원은 이렇게 말했다.

“70살 넘으면 자존심 정도는 어느 정도 타협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참지 못하는 것은 모멸감이다. 초소 강제 이동을 당해 보니 형님(고인)이 당한 걸 전부는 아니라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해당 경비원은 그만두기보다는 버티며 싸우길 택했다. 이 아파트의 사건으로 언론에서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다음은 그중 하나다.

“제가 현수막 문구 작성 이유로 한 달 전에 불려 갔었어요. 우리 아파트에 가장 열악한 ○동 ○라인에 배정돼서 9일째 근무하고 있어요. 그러나 나는 뭐라고 선언했냐면, “나는 견딜 수 있다. 내가 나갈 줄 알지? 거꾸로 매달아 놔 봐. 나는 오히려 전투력만 더 생겨." 굉장히 나는 지금 강해졌어요.”

 

관리소장 퇴출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경비노동자들과 민주일반노조 조합원들. 사진 제공_ 전국민주일반노조

 

이 투쟁이 6개월이나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관리소장은 노조의 집회를 봉쇄하기 위해 악의적인 가처분 소송도 걸었다. 입대의 회장은 관리소장을 비호하며 주민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하지만 관리소장의 가처분 소송은 노조의 완전한 승리로 판결이 났다. 집회가 정당하므로 금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입대의 회장도 주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표차로 해임이 가결되었다. 이 모두가 탄압당하고 억압당해도 굴복하지 않는 노동자의 의지가 없었다면 과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항상 되뇌고 있다. 나는 이 투쟁의 담당자로서 조합원이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싸우는데 내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매일같이 되새기고 있다. 

 

박현수 조직부장이 지난 7월 18일 열린 화요 집회에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전국민주일반노조

 

법적으로는 노조와 경비원들이 이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대의와 관리소장은 법도 무시하고 있다. 새로운 동 대표와 감사, 회장을 선출하라는 구청의 시정명령도 입대의와 관리소장은 무시하고 있다. 주민투표로 인해 해임되었는데도 입대의 회장은 회의를 주관하며 이제는 경비원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관리소장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 투쟁이 여기까지 오면서 결국 법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해졌다.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는 노동자의 의지가, 사람이 죽었는데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다. 나는 오늘도 경비노동자들과 함께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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