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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동지가 뭐야?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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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아빠, 동지가 뭐야?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지회장

 


나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 2005년도에 입사해서 사원부터 시작하여 한 공정을 책임지는 반장까지 16년간 현장에서 일을 했다. 노조 조합원들은 한 해 한 해를 시한부 삶을 살듯 불안한 환경 속에서 직장 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다. 2018년, 2019년 두 번의 구조조정에다 회사는 수없이 폐업할 수 있다고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금속노조 12기 지회장이 됐고 조합원들은 임단협에서 임금보다는 고용안정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임단협 교섭에서 나는 사측에 ‘고용안정을 최우선적으로 논의하자, 고용안정 방안을 찾아 보자’고 했다.

 

기회는 찾아왔다. 중국 상하이 공장이 봉쇄되면서 중국 물량이 국내로 일부 들어오게 되었다. Nitto는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한다) 방침에서 분산 생산하여 물량을 안정적으로 고객사에 납품하겠다고 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LCD모니터에 들어가는 편광 필름을 만드는 업체로 주 고객은 LG디스플레이다. 기회를 잡기 위해 2018년, 2019년에 구조조정을 당하였던 옛 직장 동료들을 경력직으로 채용하게 되었고 일본 본사 정보재사업본부장이 직접 내방하여 ‘향후 고용안정이 되도록 물량 확보를 하겠다, 여러분들이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 꺼져 가는 촛불에 새 희망의 불씨를 밝혔으니 최선을 다해 같이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를 하면서 정상화를 시켜 가고 있었고 대표이사는 일본에 가서 하반기 방침 발표를 마치고 와 중국에 있는 설비도 신규로 도입하여 내년 모델도 추가로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날이었다. 신규 설비 도입이 확정되었다고 하던 날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회사 인사과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공장동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차를 돌려 회사로 향하면서 사무장한테 연락을 했다. 사원들은 안전하게 대피를 하였는지 물었다. 다행히 퇴근 후 현장에는 조합원은 없었고 일부 남아서 일하는 조합원들은 저녁 식사 시간이라 식당에 있다가 안전하게 대피를 했다고 한다. 회사에 도착하니 소방차가 와서 화재 진압을 하고 있었고 눈앞에서 수십 년간 일한 공장동이 전소되고 말았다. 한쪽에서는 조합원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집에도 못 가겠다고 걱정을 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다음 날 임시휴업이 진행되었다. 조합은 앞으로 상황을 논의하자고 했다. 하지만 대표이사는 화재 원인 조사를 해서 본사에 보고하는 중이라며 아무런 결정을 할 수 없다, 본사 최고경영진이 결정할 사항이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회사가 한 정상화 약속도 있기에 조합 간부들과 논의 끝에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회사는 화재가 발생하고 한 달 뒤 청산 통보를 했다. 노조 대표단과 일본 대표이사를 포함한 회사 측과 만났다. 앞으로 진행 상황은 노무사에게 위임하겠다고 한다. 노무사가 위임받은 것은 위로금에 관한 논의뿐이었다. 고용에 대해서 먼저 얘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니, 노무사는 자기가 얘기할 범위는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조합과 회사는 서로 주장하는 것이 달라 평행선을 달려갔다. 노동조합은 ‘구미공장 재건하고 고용안정 보장하라’, 회사는 ‘위로금을 지급할 테니 희망퇴직을 하라’, 입장이 달라 회사와의 만남은 더 이상 없었다. 노조에서 수차례 보충 교섭을 요구하였으나 회사는 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희망퇴직을 강행하였다. 노조는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현 상황 설명과 교육을 진행하였으나 사측이 제시한 위로금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함께해 온 사무장과 간부 동지들이 희망퇴직을 해야겠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생계 때문에 함께 끝까지 싸워 주지 못하지만 반드시 내 억울함까지 회사에게 갚아 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 반드시 구미공장 재건시켜 다시 함께 일하자.’ 하고 웃으면서 헤어졌다. 조합원 146명 중 129명이 퇴직했다. 12월 16일 희망퇴직 신청 종료일이 지나 19일 지회 사무실에 모인 조합원 17명은 ‘구미공장 재건하고 고용안정 쟁취하자’라는 슬로건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희망 퇴직을 거부한 조합원들이 2022년 12월 21일 공장에서 해고장 반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청산 철회 투쟁을 결심할 때 아내의 말 한마디와 격려가 큰 도움이 됐다.

“큰아이 키울 때 12시간 주야 교대로 일하면서 오빠가 청춘을 다 바친 회사고 그렇게 일한 오빠 때문에 나는 독박 육아 하면서까지 지켜 온 회사인데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하는 건 억울하지 않아?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돈은 나중에 둘째 조금 더 크면 나도 일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집에서 집회 발언을 연습하는데 다섯 살 막내딸이 “아빠, 동지가 뭐야?” 하고 물어보고는 웃으면서 “투쟁!” 하고 외친다. 우리 딸들은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 한구석이 이상하게 아팠던 거 같다.
 

 

내가 살면서 해고장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해고장 받을 거라 생각하면서 일하는 노동자는 없을 거다. 투쟁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해고는 살인이다’ 이런 문구가 있었다. 참 무심하게 살아온 듯했다. 그동안 수많은 해고자들이 있었고 그 억울함에 투쟁을 하는 많은 동지들이 있는지 몰랐다. 그동안 연대를 못한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아침 출근 시간에는 구미 주요 사거리에서 시민 선전전을 하고 직접 선전지도 제작하면서 우리의 결의를 다져 나가기 시작했다. 12월 21일 해고장 반환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는데 아침부터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내 생각과 달리 우리 조합원들은 위축되지 않았다.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이 투쟁 끝까지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합원들이 대단해 보였다. 함께 투쟁해 줘서 고마웠다.

 

아침 출근시간 구미 시내 도로 위에서 선전전을 하는 해고 노동자. 사진 제공_ 한국옵티컬하이테크지회

 

정신없이 2022년이 지나가고 새해를 맞이했다. 고용관계 종료일인 2월 1일이 다가오고 우리가 이렇게 있다가는 지회 사무실도 사용 못하게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1월 30일 지회 사무실 앞에 천막을 설치, 공장 점거를 시작했다. 그러자 회사는 천막을 철거하고 조합 사무실을 공장 밖에 이전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해고해 놓고는 공장 밖에다가 조합 사무실을 구해 준다고 한다. 멀쩡한 조합 사무실을 두고 왜 공장 밖으로 나가냐고, 우린 여기 조합 사무실에서 노조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회사는 공장 사수 투쟁이 부담이 되었는지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던 토지를 한국산업단지공단에 입주 계약 해지를 하였고 천막 철거가 지연되는 날짜만큼 하루 140만 원, 월 47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협박을 했다.

 

20223년 1월 30일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 천막을 설치, 공장 점거를 시작했다. 사진 제공_ 한국옵티컬하이테크지회

 

화재 사고 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선전전과 공장 사수 투쟁을 하고 있지만 회사가 묵묵부답으로 있으니 조합원들이 조급해하고 지쳐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교육을 배치하고 간담회도 하면서 조직을 재정비하는가 싶었는데 저번 주에 3명의 이탈자가 생겼다.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던 동지가 자본과 타협을 하려고 한다. 지자체에서 외국인투자기업에게 각종 혜택을 주면서 유치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고용안정이 되도록 관리를 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구미지부 투쟁사업장 공동수요문화제를 한다. 조합원들과 결의하고 다짐하면서 이 투쟁 끝까지 이어 가면 반드시 승리할 거라 믿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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