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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당당한 ‘콜센타 그 언니’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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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우아하고 당당한 ‘콜센타 그 언니’

변지현/ 금속노조 유베이스수원지회 사무장

 


나는 2017년 6월 19일 콜센터 아웃소싱 전문 업체인 유베이스에 입사했다. 유베이스는 용산, 여의도, 을지로, 부천, 부산 등지에 메가 센터를 두고 있고 160여 개의 고객사가 있다. 그중 수원사업장은 (주)삼성전자서비스CS(이하 삼성서비스)를 고객사로 두고 있었고 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했다.

 

1평 정도 되는 자그마한 공간에 칸막이가 쳐진 책상에서 하루 8시간, 평균 150∼200통의 전화를 걸고 받으며 각자 본인들 일만 한다. 일한 만큼 실적으로 반영하여 1등부터 꼴등까지 책정되고 그게 곧 인센티브가 된다. 서로서로 친하긴 하지만 경쟁이 익숙해져 버린 관계들.

 

업무는 CMI(Customer Monitoring Index), B2B(Business To Business), 일반적인 A/S 수신 전화를 받는 부서로 구성되어 있다. 업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CMI 부서는 삼성서비스에서 가전제품이나 스마트폰 등 A/S를 받은 고객에게 해당 서비스가 어땠는지 고객만족도 평가를 받고, 점수가 낮다면 왜 낮은 점수를 주었는지 불만 고객에게 발신하여 구체적인 사유를 묻고 개선해야 할 점을 취합한다. 받은 서비스에 상당한 불만이 있고 원하는 대로 처리가 되지 않아 화가 나 있는 고객에게 ‘원치 않는 전화’를 걸어 해당 상황을 다시 상기시키고 해결점 없이 고객의 의견만 달라고 하는 굉장히 까다롭고 불만도 자주 발생하는 고난이도의 업무다.

 

삼성서비스와 10년이 넘게 하청 계약을 유지해 오고 있었지만, 매년 연말에는 부서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돌았고 직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2019년 말, 소문이 사실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부천 본사의 사업팀 팀장이 수원사업장에서 하는 업무를 부천으로 가지고 갈 계획이고 퇴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업급여를 ‘받게’ 해 주겠다고 했다.

 

일과 가사, 자녀 양육 등을 병행하는 중년의 주부들에게 아무런 대책 없이 ‘부천으로 일하러 갈 사람들은 가라’는 통보는 해고 통보나 마찬가지였다. 자가용이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각자의 집에서 부천 센터까지는 왕복 4시간 정도가 소요되니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직원들은 생계 불안 등의 급한 마음에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는 의견들을 내놨다. 그리고 2019년 3월 27일 ‘금속노조 유베이스수원지회’가 설립되었다.

조합원 평균연령 50세. 서로가 경쟁 관계였던 상태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노동조합이라니…. 나만 해도 입사했을 때부터 남한테 관심이 없었다. 입사한 이유도 그냥 남들 쉴 때(주말)에 쉬고 싶어서 들어왔던 거라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하고 친해질 이유를 못 느꼈다. 괜히 친해져서 각자의 개인 사정이라든지, 약점이라든지 그런 걸 알고 싶지 않았고 알게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노동조합의 ‘노’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노동조합은 정말 오합지졸이었다. 콜센터라는 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조합을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우니까…. 하지만 외부의 시선이나 사측이 생각하는 그림대로는 절대 흘러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맡은 사무장 역할 내에서 나름의 모든 걸 다 갈아 넣어 지회를 유지하고 운영해 왔는데 3년 만에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1인시위를 하는 변지현 사무장. 사진 제공_ 유베이스지회

 

2021년 11월 29일 사측은 삼성과의 계약 해지로 CMI 부서에 더 업무가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2021년도 단체협약을 맺은 지 불과 52일 만이었다. 단협에는 ‘업무의 배치전환은 사전에 조합 및 본인과 충분히 협의해야 하며, 불이익하게 전환할 때는 합의하여 시행한다.’라는 조항이 있다. 단협은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보다 우선 적용된다. 사측의 행동은 단협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동이었다. 12월 1일부터 고용안정협의회를 진행하였으나 사측은 별다른 대책을 내지 않아 12월 한 달간 무의미한 고용협의회만 진행됐다. 회사는 조합원 희망퇴직을 종용했고 계속되는 압박과 스트레스로 인해 조합원 10명이 희망퇴직을 했다.

 

2022년 1월 사측은 전환배치 개인 면담을 진행했다. 이미 고용안정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지회에 위임한 상태인데 개별 면담이라니?! 재택근무에 대해 편하게 얘기하라는 사업팀 팀장의 말에 조합원들은 각자의 개인 사정과 ‘생각’을 말했다. 다수의 조합원이 ‘생활권인 수원 사업장을 유지하고 유사 업무를 유치하여 오랫동안 함께한 동료들과 같이 업무하는 것이 필요하며 부천 등 타 지역으로 전환배치 시 생활상의 불이익 규모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는 취지로 답변했는데, 후에 사측은 해당 답변을 두고 ‘회사에서 재택근무까지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조합원이 재택근무를 반대했다는 억지 주장을 했다. 한 번도 정식 서면으로 제시안을 보내지 않은 채 고용안정을 위해 사측이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중년의 여성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개인적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무엇보다 가족들이 다 있는 집에서 하루 8시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고객들을 향해 머리를 숙여 가며 “죄송합니다. 시정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를 말하는 한 집안의 딸이자, 엄마이자, 아내의 입장은 어떨 것인가? 그걸 바라보는 부모님, 자녀, 배우자는 또 어떤 기분이 들 것이라 생각되는가? 짧게는 10년, 길게는 30여 년 동안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온종일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자존감도 점점 떨어지고 어딜 가서도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상담사들이 마음만은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집이다. 그런 공간마저 회사 업무와 집안일을 합쳐서 할 수 있는지 묻는다는 것은 상담사들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이었다.

 

지회는 더 이상 고용안정협의회 등으로 풀어 갈 문제가 아니라 판단, 경기지부에 조기 교섭 요청 안건을 승인받아 사측에 특별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교섭을 회피했다. 우여곡절 끝에 2022년 1월 고용안정 특별교섭 1차 교섭이 열렸다. 사측의 주장은 변함이 없었다. 유베이스 대표이사와도 면담을 하였으나 입장은 같았다. 지회는 일정 부분 회사의 상황을 고려한 새로운 요구안을 2차례나 냈지만, 회사의 태도 변화는 없었다. 회사는 3월 7일 인사위원회를 개최했다. 그날은 난생처음 집회를 했다. 재심과 징계위, 징계위 재심 등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많은 조합원이 희망퇴직을 했다. 현재 해고된 조합원은 12명이다.

 

2022년 4월부터 우리 지회는 본격적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전국에 많은 센터를 가지고 있는 만큼 곳곳에 집회신고서를 냈다. 부천원미경찰서, 용산경찰서, 서울중부경찰서, 부산연제경찰서 등…. 살면서 경찰서를 이렇게 많이 또 자주 가 본 적이 있을까? ‘웃픈’ 얘기지만 경찰서에 가면 집회신고서가 아주 완벽하다는 칭찬(?)까지 듣는다. 상담사들이 점심시간에 나와 볼 수 있도록 난생처음 중식 선전전을 진행하고 홍보물도 배포했다. 선전전을 하면서 불쌍해 보이거나 안타까워 보이고 싶지 않다. 단체협약을 지키지 않은 부당징계와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는 정당한 권리를 얘기하고 있으니 우아하고 당당하게 우리 얘기를 전했다.

유베이스지회의 선전 물품. 인스타그램 @콜센타그언니 계정으로 지회 소식이 올라온다. 사진 제공_ 유베이스지회

 

부천 드림센터 앞에서 중식선전전 하던 날. 대창지회와 대원산업안산지회에서도 연대했다. 사진 제공_ 유베이스지회

 

콜센터 일이란, 친절하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러니 최저임금을 줘도 되고 필요 없으면 다 쓴 배터리 교체하듯 나가라고 해도 된다는 인식이 사회에 깔려 있다. 콜센터 노동자야말로 현 사회에 꼭 필요한 ‘필수 정보·전자 노동자’라는 걸 미약하게나마 세상에 알리고 우리의 권리도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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