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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빌런이었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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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빌런이었다

 

강정민/ 제30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글 부문 수상자

 


치매 엄마를 둔 지인을 만났다.

“사람 잊는 것도 순서가 있어. 처음엔 우리 딸을 보고 ‘사돈처녀가 나 때문에 불편해서 어쩌냐?’고 하더니 나중엔 우리 남편을 보고 ‘너는 결혼도 안 하고 어디서 남자를 데려왔냐?’고 뭐라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결혼사진 다 보여 줬지.”

모임에 같이한 사람들은 웃었지만, 나는 씁쓸했다.

작년 7월 말, 구순의 엄마를 입원시킨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엄마가 식사를 못 한다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미음을 끓여 드릴 생각으로 친정에 갔다. 그런데 엄마의 상태가 심각했다. 방은 절절 끓고 엄마는 열이 40도였다. 그 길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향했다. 간호사는 엄마에게 주삿바늘을 꽂으려 했지만, 작은 체구의 엄마는 의외로 거칠게 저항했다. 나는 엄마의 몸을 있는 힘껏 눌렀고 간호사는 엄마의 몸에서 붉은 피를 뽑았다.

새벽 1시, 의사가 엄마의 폐에 염증이 있다는 것과 ‘연명치료 거부 동의서’에 사인해야 입원이 된다는 걸 알렸다. 형제 톡방에 알리고 동의서에 사인했다. 코로나로 병실이 부족한 상황이라 3인실에 입원했는데 환자는 한 명뿐이었다. 

 

영양제가 들어가면서 엄마는 아침부터는 기운이 슬슬 돌아왔다. “보일러 틀어!” 엄마는 복더위에 에어컨을 튼 병실이 춥다고 했다. 나는 핫팩을 엄마 손에 쥐여 줬다. “응. 보일러 틀었어. 엄마 손 따뜻하지?” “나쁜 놈이 돈도 많으면서 보일러를 왜 안 틀어!” 엄마가 말한 나쁜 놈은 아버지다.

 

열아홉에 홀로 월남한 아버지는 살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결혼 후엔 엄마의 씀씀이를 단속했다. 평생 보일러도 마음대로 못 틀고 춥게 살았던 것에 대한 억울함이 엄마에게 남은 거 같았다.

“우유 뜨겁게 해서 두 잔 가져와. 배고파!” 나는 컵에 온수를 받아 엄마에게 줬다. “사람이 둘인데 왜 한 잔만 가져와? 두 잔 가져와.” 엄마는 대접해야 할 사람이 있다고 했다. 엄마가 경도 인지장애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치매가 된 건지 아니면 섬망이 온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내 틀니 어디 있어?” 나는 엄마 손을 잡아 틀니를 만지게 했다. “끼고 있네.” “나 화장실 갈 거야.” “기저귀 찼어. 그냥 싸.” “여기서 싸라고?” “응.” “싫어.” 엄마는 기저귀에 일보는 걸 죽어라 싫어했다.

 

엄마는 몇 가지 말을 계속 반복했다. 낮에야 이런 대화가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지만 밤이 되면 문제가 될 거 같았다. 돈이 얼마 들든 1인실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실이 없냐고 간호사에게 물었다. “1인실 없어요.” 간호사가 답했다. “그럼 수면제 좀 투약해 주세요.” “처방전 없어서 안 돼요. 내일 의사 선생님께 말씀하세요.” 

엄마는 밤에도 여지없이 소리를 쳤다. 간호사에게 침대를 복도로 빼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새벽 3시 같은 병실의 보호자가 참다가 일어나서 한마디 했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나는 죄송하다 하고 간호사를 찾았다. “엄마가 시끄럽게 해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데 복도로 뺄 수 없을까요?” 당직 간호사는 표정이 없었다. 간호사는 시끄러운 엄마를 보고 처치실로 침대를 빼 줬다. 에어컨 바람 세고 불도 못 끄는 처치실에 나는 간이침대도 없이 동그란 바퀴 의자에 앉아 엄마 손목을 쥐고 날밤을 새웠다. 

 

다음 날, 아침에 병실로 엄마를 옮겼고 저녁에는 수면제가 나왔다. 엄마에게 약을 먹이려다 약을 쏟고 말았다. 간호사에게 다시 약을 달라 했더니, 간호사가 짜증 내며 본인이 직접 먹이겠다고 했다. 엄마가 약을 안 먹어도 내 책임이 아니게 돼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엄마 얼굴을 잡았고, 간호사는 약 수저를 엄마 입에 쑤셔 넣었다. 약을 먹였다고 생각한 순간, 엄마가 물약을 뱉었다. 그런데 엄마가 뱉은 게 하필 간호사 얼굴로 튀었다. 그 순간, 내 손이 엄마의 따귀를 때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도 깜짝 놀랐다. 그런데 간호사는 의외로 차분했다. 간호사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엄마의 볼을 쓰다듬었다. “엄마, 미안해.” 눈물이 났다. 간호사는 괜찮다고 말하고 병실을 나갔다. 엄마는 말이 없었고 표정도 없었다. 엄마를 때린 나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생각했다. 아이가 타인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을 때 부모가 아이를 혼내야 하는 것처럼, 부모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면제는 효과가 없었고 엄마는 밤에 소리를 질렀다. 나는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

 

다음 날, 청소를 하는 분이 처치실에 와서 말했다. “할머니, 예쁘게 생겼는데 왜 밤에 안 주무세요. 따님 고생하잖아요.” 엄마는 그 병동의 빌런이었고 나는 병동에서 제일 불쌍한 보호자였다. 이틀 밤을 새면서 나는 내가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에게 제발 살려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다음 날, 언니는 날 위해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들고 병원에 왔다. 덕분에 나는 지옥에서 벗어났다.

 

다음 날, 엄마는 몸이 좋아져 퇴원했다. 집에 간 엄마는 조금씩 상태가 나아졌다. 나는 엄마를 돌보며 미래를 보고 온 느낌이었다. 내가 여태 자식 도리를 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실은 내가 인격을 갖췄기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덜 아픈 덕이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엄마의 효자는 못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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