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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차가운 천막에서 재울 수 없었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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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차가운 천막에서 재울 수 없었다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


한국와이퍼 18년 근속한 40대 노동자이자 일곱 살, 열세 살짜리 남매를 키우고 있는 아이 엄마다. 나의 삶에는 여러 가지 역할이 있다.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자, 노조를 대표하는 분회장, 사회 활동을 많이 하는 남편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 늙어 가는 엄마의 딸, 열 남매의 여덟째 며느리…. 그중에서도 엄마의 역할이란 어쩌면 모든 역할 중에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여러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상 매번 앞자리에 놓이진 못했지만 적어도 나의 마음은 늘 아이들에게 있었다.

 

회사는 12월 31일부로 영업 종료를 선언하며 조합원들에게 휴업을 고지하고 현장 출입을 금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영업 종료일 전 스물여덟 살 처음 출근했던 기계 라인 앞에 섰다. 기계 오작동으로 나의 왼쪽 중지를 뭉개 버렸던 야속한 펀치를 만져 보기도 했다. 현장에서 쫓겨나는 우리 노동자들과 달리 설비 라인들은 아마도 어디론가 갈 준비를 마친 것 같다.

 

최윤미 분회장이 청산철회와 고용안정을 위한 결의 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2023년 1월 10일 한국와이퍼 안산공장 앞). 사진 제공_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에서 정당한 노조 활동과 노조 사무실 출입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니, 노조 사무실과 통로만 남겨 두고 우리의 현장을 봉쇄했다. 아직 청산 절차가 개시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20년 넘게 일한 사람들에게 쇠사슬과 패널로 현장을 봉쇄했다. 설비를 매각하려는 것이다. 한국와이퍼는 청산이라서 덴소코리아 와이퍼시스템 매각과는 상관없다던 덴소는 와이퍼시스템의 매각을 완료하고 생산 설비를 매수업체 디와이로 이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와이퍼는 인적 청산·노조 청산을 목표로 한 물적 매각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직 청산 절차가 이뤄지지 않은 현장을 봉쇄할 이유가 없다. 이에 새해부터 한국와이퍼분회는 공장 사수 조를 꾸리고 현장을 지키고 있다.

 

나는 이 기만적인 청산을 철회시키고 회사가 약속한 고용 보장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7일부터 12월 20일까지 44일간 국회 앞 단식농성을 했다. 국회 앞 단식농성을 하면서 아이들을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라 가고 힘없어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은 참기가 어려웠다.

 

단식농성 당시 둘째는 여섯 살이었다. 엄마가 한참 좋을 나이다. 둘째에게 엄마가 집을 떠나 천막에서 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웠다. 기질이 차분했던 둘째 아들이 아빠를 졸라 국회 앞 천막에 찾아왔을 때 아이는 유난히 부산스러웠다(처음에는 그것이 아이의 불안에 대한 징표인지 몰랐다). 천막 안에서 놀던 아이는 실수로 책상에 살짝 부딪혔다. 아이는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르고 엄마 표정부터 살피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파서가 아니었다. 다쳐서 엄마가 집에 가라고 할까 봐 불안해서 울음이 터진 것이다. 아이를 안고 괜찮다고 했다. 엄마는 정후를 너무 사랑한다고 해 주었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으나 아이를 차갑고 시끄러운 천막에서 재울 수는 없었다. 결국 엄마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둘째 아이에게 마음으로 약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열심히 한국와이퍼 상황을 알려서 엄마가 빨리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조용히 마음먹었던 밤이었다.

 

열두 살 첫째는 이해가 빨랐다. 어쩌면 그동안 엄마의 삶을 보며 엄마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체념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안 먹는 거야? 몰래 먹으면 안 돼?”라고 물으며 크게 동요치 않았다. 원래 바빴던 엄마였기에 혼자서 자기 생활을 챙기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던 딸이다. 단식을 끝내고 병원에 있을 때 첫째 딸이 전화해서 펑펑 울었다. 엄마가 죽느냐고….
 

이 사달은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알게 되면서 생긴 것이다. 차마 당신의 딸이 굶는다는 말을 못 했다. 밥은 잘 먹으면서 천막농성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아시게 되면 잠도 자지 못하고 앓아누우실 게 뻔했다. 엄마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효심(?)의 발동으로 친정 엄마에게만 철저히 비밀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말씀드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친정 엄마는 내가 단식을 중단한 다음 날 병원에 있을 때 남편이 올려다 놓은 짐 속에서 단식 사실을 알게 됐다. 208개 조합원들의 편지들을 읽고 알게 되셨다. 떨리면서도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니 단식했나? 40일이 넘게 굶었냐 말이다.”

경상도 출신이신 친정 엄마의 목소리는 턱없이 컸고 화가 난 것도 같기도 하고 울음이 섞여 있기도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남편 말로는 당장 짐 싸서 병원에 간다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안 된다는 말에 겨우 진정하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딸아이가 불안해졌나 보다. 원래 남들보다는 좀 힘들게 사는 엄마라 큰 걱정이 없었는데 할머니 모습을 보면서 뭔가 큰일이 벌어진 줄 알았다는 것이다. 펑펑 우는 딸아이를 전화로 달래고 차라리 친정 엄마가 아시게 됐으니 잘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친정 엄마는 더 차분해져 계셨다. 단식 사실을 생각보다 더 빨리 받아들이시고 내 보식 준비에 여념이 없으셨다. 조합원들 편지를 보셨기 때문이다. “믿는다, 사랑한다, 힘내라, 미안하다, 우리도 열심히 할게.” 등등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3시간 동안 꼼짝도 않고 다 읽으셨다고 한다. 아마도 딸의 단식 결심이 이해가 되었으리라. 아니, 이해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면서 한국와이퍼 노조는 잘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서로를 위하고 애쓰는데 잘될 거라고 확신하셨다. 우리 엄마는 60이 넘으신 연세에도 아직도 무거운 짐은 당신이 드시고 가벼운 것을 나보고 들라 하신다. 아직도 당신보다 힘이 약한 아이로 보신다. 그렇게 키운 딸이 단식을 결심하는 과정에는 209명의 절절한 사연과 마음이 있음을 아시게 된 것이다.

 

단식 때보다 더 바빠져서 아이를 자주 안아 주지 못해 미안히다는 최윤미 씨. 그래도 매일 자는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한다. 사진 제공_ 최윤미

 

세상도 그렇게 움직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단식하는 동안에는 언론에 우리 이야기가 실리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40일이 넘어서야 언론사들이 조금씩 움직였다. 단식을 끝냈던 이유에 대해 언론에는 한 문장으로 실렸다. ‘건강 악화를 이유로…’(언론에 이유를 알리지 못한 배경이 있다).

 

한국와이퍼는 일본 덴소 자본이 100퍼센트 지분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이다. 한국와이퍼의 청산은 엄밀히 말해 원청인 덴소코리아의 와이퍼사업부 철수와 주주인 덴소와이퍼의 법인 해산 결의에 있다. 문제는 그렇게 청산의 원인을 제공한 두 기업이 2021년 10월 한국와이퍼 고용을 보장하는 단체협약(고용안정 협약서)에 연대보증을 섰으면서도 그 약속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고 청산을 밀어붙이는 실질적 청산 기획자라는 것에 있다. 

 

노동부 주선으로 지난 12월 20일 덴소코리아와의 비공개 교섭이 진행됐다. 1시간 반이 넘는 교섭에서 덴소코리아로부터 언론 비공개와 단식 중단을 조건으로 한국와이퍼 사측과 더불어 덴소 기업들과의 교섭에 대한 확답을 받아 냈다. ‘혹시라도 덴소가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에 비공개 교섭 이후 금속노조 간부들의 토론이 3시간 이상 이어졌다. 단식 중단은 분회장의 건강을 우려한 모든 조합원들의 염원이었지만 덴소에 이용되어선 안 되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을 위한 토론이 이어졌다. 결국 덴소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는 입원을 하기로 결정됐다. 44일간의 단식이 빛바래지 않도록 진짜 사장 덴소와의 교섭을 기대했다.

 

하지만 덴소는 끝없는 탐욕의 끝판왕이었다. 주주인 덴소와이퍼만 교섭에 내보내고 원청인 덴소코리아는 정작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는 한국와이퍼 사측은 기만적인 3차 조기퇴직제도를 시행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니 덴소는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당장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막을 생각에 고용안정 협약서에 거짓으로 약속하고 청산 준비를 철저히 해서 단협을 무용지물로 만들 생각이었고 그렇게 시행했다. 고용안정 협약서 위반에 대해서는 위로금을 제시하여 자발적 퇴직을 유도하는 것으로 피해 가려고 했다. 회사에 민형사상 어떠한 이의 제기도 하지 않는다는 부제소 합의(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약정하는 것)를 하면 상당한 금액의 위로금을 줄 테니 자발적으로 퇴직하라는 것이다.

 

44일간 단식을 진행했던 분회장이 안쓰러워 대다수 조합원들은 조기퇴직제도에 응하지 않았다. 3차 조기퇴직제도에는 조합원 221명 중 12명만 응했다. 209명의 조합원들이 의연하게 투쟁을 이어 갔다. 결국 덴소코리아와 덴소와이퍼는 모두 교섭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덴소 기업들은 나 몰라라 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는 지난 해 12월 31일 회사의 영업 종료 선언 후부터 공장 사수조를 꾸려 농성하고 있다. 사진 제공_ 한국와이퍼분회

 

결국 법원도 한국와이퍼노조의 단협 위반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청산에 대해 노조와 합의해야 하는 단협이 있다면 노조와 합의 없이 해고를 해선 안 된다는 판결이 난 것이다. 법조차도 단협 위반을 엄중하게 보고 있는데 노조법을 가장 준수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오히려 ‘외투기업이라서 처벌이 어렵다’ 등등의 이유로 덴소코리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미루고 있다. 청산의 원인을 제공한 덴소 기업들을 조사 처벌하지 않는다면 한국와이퍼의 청산은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이제는 고용노동부와 정부가 답할 차례다. 희대의 사기 단협을 맺어 한국의 노조법을 유린하고 있는 일본 덴소 자본에 대해 제대로 조사 처벌하지 못한다면 결국 대한민국 국민의 생존권을 정부가 지켜 내지 못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공장을 지키며 밥을 해먹는 한국와이퍼 노동자들. - 사진 제공_ 한국와이퍼분회

 

고용노동부와 덴소 자본은 분회장이 단식을 끝내면 더 이상 조합원들을 움직일 동력도 사회 연대의 힘도 중단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단식농성 때보다 더 폭넓게 연대하고 있고 ‘밥정’으로 무장하고 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함께 활동하고 힘을 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덴소코리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덴소코리아와 한국와이퍼는 고용안정 협약서를 지키기 바란다. 그리고 이를 강제하기 위해 의로운 많은 분들이 나서서 함께 목소리를 내 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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