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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사님, 잘 지내시죠?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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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작은책 산재 상담소

 


노무사님, 잘 지내시죠?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인노무사

 


“노무사님, 잘 지내시죠?”

항상 당신의 인사는 그렇게 시작하지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 아니 전화기를 들어서 버튼을 누른다는 것이 별일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그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반가웠지요.

 

사실 처음에는 당신의 사건을 맡지 않으려고 했어요. 2016년 6월 1일 노조 산재부장이 재심사까지 불승인된 것이라며 검토를 요청했어요. 쉽지 않은 독특한 사건이었어요. 회사에 출근해서 조회를 마치고 사원용 차량 구입을 위해 반장에게 보고한 뒤, 자전거를 타고 회사 내 차량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넘어진 사고였어요. 경추 3~4번 척수 등이 크게 손상되어 사지마비가 된 아주 심한 재해였어요. 근로복지공단은 사적 용무인 개인 차량 구입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정했고, 이후 산재심사위원회와 산재재심사위원회도 마찬가지였지요.

 

며칠 뒤 당신의 아내는 사무실로 저를 찾아서 2시간 상담 동안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지 못했어요.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갑작스런 가장의 불의의 사고로 인해 고통과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하셨지요. 여러 각도에서 사건에 대해 분석과 상담을 해 주었고, 어려운 사건이라고, 무엇보다 소송밖에 남지 않았는데 신중히 변호사를 선임하셔야 한다고 돌려보냈어요. 그리고 문을 나가는 당신의 아내에게 다른 로펌에서도 어렵다고 맡지 않는다면 다시 저를 찾아오시라고, 그때는 제가 맡아 보겠다고 했어요. 두세 군데의 변호사를 면담한 당신의 아내는 다시 저를 찾아왔어요.

“노무사님, 다른 변호사님들이 맡지 않겠다고 하네요. 노무사님이 맡아 주세요.”

그래서 제가 당신의 사건을 맡게 된 것입니다. 당신의 사건을 어떻게 재구성해서 논리를 펼칠 수 있을까? 수십 번 고민해 보았어요. 출근길이었던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서 항상 이 사건만 생각했어요. 제가 알 수 있는 모든 산재법의 적용 논리와 법리를 상상해 보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윤곽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더라고요.


저는 제 머릿속에 있는 이 사건을 소장으로 옮기기 시작했어요. 이 사고는 업무 시간 중에 일어난 재해이지만, 차량상담센터로 가서 차량을 구입하는 행위와 그 이후 복귀하는 과정을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이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이 사건을 정리하고 주장했었어요.


첫째는 차량 구입 행위 자체가 상급자의 승인을 받았던 점과 회사 공장 내 차량상담센터를 설치하여 구매 가능하도록 한 점 등을 근거로 사업주 지배 관리하에 있는 업무 수행 중 재해로 주장했어요. 두 번째, 복귀 행위는 업무를 위한 준비 행위로 보았고, 자전거 이용은 부득이한 필요적 수단이었으며, 사업주가 승인한 수단을 통한 통상적 경로로 복귀 중 사고라는 점을 강조했어요. 준비 서면을 통해 다른 산재 판결을 인용해서 사업장 시설 내 도착한 이후 통근 행위는 노무 제공이라는 업무 행위 또는 그 준비 행위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라는 점(서울고법 2004. 9 .24. 선고 2004누628판결)을 분석해서 주장했어요. 

두 번째 준비서면을 통해 휴게 시간 법리를 인용해서, 이 사건 재해가 통상적·정형적·관행적 방법에 따라 휴게 시간 중에 발생한 경우라는 점을 부각했어요. 당시 재해가 형식적으로는 업무 시간 중에 발생한 것은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상급자의 허락으로 인해 당사자에는 휴게 시간이나 마찬가지였거든요. 이를 위해 회사에 대한 사실조회를 통해 월별 차량상담센터 상담 건수가 2016년에 월 342건이나 된 사실에 기초로 주장했던 것이었어요. 변론이 종결된 이후에도 참고 서면을 통해 회사의 복리후생시설의 이용 중 재해라는 주장을 강조했어요. 

 

해를 넘겨 2017년 1월 12일 행정법원 판사는 우리 손을 들어 주었어요. 그때 출장 중이었던 저는 아침부터 가슴 졸이며 인터넷으로 선고 결과를 검색했었어요. 아, 얼마나 기쁘던지! 그때 당신의 배우자에게 전화했지요. 우리가 이겼다고! 해냈다고요! 법원은 차량상담센터 자체는 복리후생시설이고 회사가 관리하는 물적 시설이라고 보았어요. 또한 여기에서 구매하는 것을 회사가 장려했으며, 차량 구입을 위한 상담 시간을 사실상 회사가 허용한 지배·관리가 미치는 시간으로 보았어요. 특히 작업장 복귀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으며, 당시 통근 버스가 없어 자전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판결했어요(서울행정법원 2017. 1. 12. 선고 2016구단58195판결). 이후 근로복지공단의 항소 및 상고에서도 1심 판결은 변하지 않았어요.

 

며칠 전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퇴근길에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더군요. 몇 분 뒤 전화를 못 받아 죄송하다고 하시며 간병인의 도움으로 제게 전화를 했었지요. 요양병원에서 코로나 감염이 되어 여러 걱정이 든다는 말과 함께 이미 성인이 되어 어른 몫을 하는 두 아이의 얘기를 해 주셨어요. 당신은 제 핸드폰에 저장된 분 중 유일하게 전화를 혼자 힘으로 걸 수도 받을 수도 없는 분이지만, 제게 먼저 전화를 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좋은 분이에요.

“노무사님, 잘 지내시죠?” 

그 목소리 항상 반갑고 고마워요. 저는 잘 있습니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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