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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고 싶은 건강보험 상담사입니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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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함께하고 싶은 건강보험 상담사입니다


장현경/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조합원

 

 

"함께하는 건강보험 상담사 장현경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12년째 하루에 백 번도 넘게 하는 인사말이다.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어떻게 일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노동조합 이전과 이후의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1분, 1초 관리자의 감시 아래 “화장실 다녀와도 될까요?”라며 허락을 받던 일상이 이제는 마음 편히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게 되었고, 아프면 병원도 갈 수 있고, 연차도 원하는 날 쉴 수 있게 되었다. 시간 외 근무에 대한 수당도, 부족한 업무에 대한 교육도 당당히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통화 시간이 길어져도 관리자의 등쌀에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으며 민원인의 궁금증이 모두 해소될 때까지 친절하게 상담할 수 있어 공공기관의 상담사라는 자긍심까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건강보험공단과 하청업체는 우리에게 과한 기준을 들이대고 있고 여전히 소모품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단 전화번호를 알려 주면 나의 평가에 감점이 있기에 번호를 알려 달라는 민원인에게 “제가 상담해 드려도 될까요?”라며 민원인과 실랑이한다. 건강보험제도가 바뀌어도 교육을 하지 않아 민원인보다 제도 시행을 더 늦게 아는 일은 아직도 여전하다. 그러나 하청업체는 제대로 된 건강보험 상담을 위한 교육도 하지 않으면서 전화는 많이 받으라고 닦달한다. 교육이 없기 때문에 상담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일절 고려하지 않는다. 아직도 하청업체는 상담노동자 개인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건강보험 고객센터에서 10년 이상을 근무했지만,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근무 경력에 따른 대우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다. 신입보다 못하다는 말이 우리끼리의 공공연한 농담이다. 하청업체에서 보험료 납부 마감일만 되면 간식이라고 주는 컵밥과 컵라면이 내 책상 위에 쌓여 가는 것을 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느끼는 차별과 서러움은 여전하다.

보험료 납부 마감일이 되면 간식으로 주는 컵밥과 컵라면. 사진_ 장현경

 

작년 겨울, 우리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전화만 받던 삶에서 처음으로 동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며 상담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알리고자 치열하게 싸웠다.
 

그렇게 2월, 6월, 7월 세 차례 70여 일의 파업 후 다시 일터로 복귀하니 그래도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간혹 상담 중에 “더운데 고생했다.”라는 민원인들의 응원을 들으면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준 분이 계셨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 한편 폭염과 폭우 속에서 동지들과 함께한 파업투쟁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2021년 파업 당시 농성장에 걸린 피켓. 사진 제공_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또한, 지난 10월 민간위탁사무논의협의회에서 ‘소속기관 전환’이 결정됐고, 11월에 최종적으로 고용노동부에서도 소속기관으로 전환이 승인 났다고 하니 “이제는 다 됐구나” 하며 희망 회로를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5개월 동안 공단의 이런저런 핑계로 소속기관 전환의 첫 단계인 노사전문가 협의체 구성조차 하지 못했고, 하청업체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으니 신규입찰을 강행하겠다는 공단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보면서 ‘내가 어리석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제대로 뒤통수 맞고 공단의 입맛대로 모든 일이 진행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5개월 만에 다시 공단 본부가 있는 원주로 향했다. 이렇게 천막농성이 시작됐다. 농성 생활 중 강원도의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도 한겨울에 천막에서 잠을 청하는 것도 괜찮았다. 그것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대화의 의지조차 없는 공단의 태도와 일부 정규직 직원들의 혐오 어린 시선이었다. ‘전화나 받는 것들이 못 배워서 그래’, ‘너네가 왜 우리 땅에 있어! 우리 땅에서 나가!’라는 일부 공단 직원들의 비난은 견딜 수 없는 상처였다.
 

상담노동자의 가치를 인정하여 근무 경력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조금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을 갖게 해 달라는 요구가 이런 칼날 같은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인지 원망이 생겼다. 하지만 이내 같은 노동자로서 함께 불합리한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눠서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게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부산지회 조합원이 직접고용 염원을 담아 그린 그림. 사진 제공_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올해 1월부터 시작한 52일간의 천막농성으로 노사전문가 협의체 구성원의 일부인 근로자대표를 노동조합의 대표로 선출은 할 수 있었지만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실망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지난 3월 대선이 끝나고 대통령 당선인이 결정됐다. 연일 뉴스에서는 우려 섞인 노동계의 목소리가 전해지고 있다. 벌써 주변에서는 노동조합 탄압을 걱정하고 우리의 정규직 전환이 험난할 것이라는 한숨 소리가 들린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한다. 단결은 노동자의 무기다. 힘든 시기일수록 노동자들은 더욱 단결하여 함께 싸워 왔으며, 역사는 언제나 투쟁하는 자만이 바꾸어 왔고 기적을 일으켜 왔다. 작년 한 해 우리는 무시무시한 코로나도,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도 이겨 내고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고 험난하다. 어느 투쟁가의 한 소절처럼 아직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1월 공단 앞 농성 중 한 조합원이 소원지를 달고 있다. 사진 제공_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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