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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에 맞선 다윗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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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골리앗에 맞선 다윗들

남수경/ 미국 공익 인권변호사

 

21세기판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졌다.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회사로 미국 내 고용된 노동자만 110만 명이 넘는 거대 기업 아마존에 맞서 평범한 노동자들이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세계 두 번째 부자로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다. 이에 맞선 평범한 노동자들이 미국 노동운동사의 한 장을 장식할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뉴욕시 스태튼아일랜드에 위치한 물류창고 노동자들이 아마존 창업 이래 최초로 노조를 조직했다.

 

ⓒMat McDermott

 

노조 승인 투표 결과가 발표된 날인 4월 1일은 공교롭게도 만우절이었다. 아마 아마존 경영진은 이 소식이 그저 만우절 농담이길 바랐을 것이다. 노조를 막기 위한 컨설팅 비용에만 무려 430만 달러(약 53억 원)라는 사상 초유의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창업 이래 27년 동안 이어져 온 무노조 정책에 첫 균열이 났다.

 

아마존은 이미 앨라배마주에서 벌어진 노조 조직화를 막아 낸 터라 이번에도 이길 것이라 기대했다. 다수의 노조 전문가들조차 아마존에서 노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다른 업종에 비해 유난히 높은 이직률과 무엇보다 사측의 공격적이고 집요한 노조 방해 공작 때문이었다.

 

그런 거대한 골리앗에 맞선 싸운 사람들은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2020년 3월 코비드 팬데믹으로 뉴욕시 전체가 락다운에 들어갔지만 소위 필수노동자로 분류된 아마존 노동자들은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되는 작업장에 나와 일을 했다. 하지만 마스크나 보호 장구는 지급되지 않았고, 거리두기도 없었다. 모든 것이 멈춘 팬데믹으로 인해 도리어 아마존의 매출은 늘어났다. 사측은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 혹사시키고 그들의 작업 속도를 수초 단위로 체크했다. 21세기 첨단 유통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19세기 노동자들처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작업 속도를 맞추다 보면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회사는 이를 숨겼다. 팬데믹 대목을 맞아 이윤을 더 많이 올리는 것에 급급해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은 안중에도 없었다.

 

결국 분노한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섰다. 목숨을 담보로 일할 수 없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우리의 건강도 필수적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항의를 했다. 그러자 사측은 주동자 중 하나인 크리스 스몰스라는 노동자를 바로 해고했다. 그렇게 사태는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해고된 크리스 스몰스는 30대 초반의 흑인 청년으로 고졸 학력의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의 동료인 데릭 파머도 형편은 비슷했다. 크리스와 함께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조직한 데릭은 다행히 해고를 면했다. 크리스와 데릭은 작업장 안과 밖에서 노동자들을 만나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의 고문변호사는 제프 베이조스와 노조 저지 방안을 논의하면서 크리스를 ‘똑똑하지도 언변이 뛰어나지도 않은’ 자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그런 크리스를 노조 주동자들의 ‘대표 얼굴’로 만들어 공격하면 노조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것은 사측이 행동에 나선 노동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많이 배우지 못한 노동자에 대한 멸시와 인종적 편견을 그대로 드러냈다. 아마존에서 흑인 노동자들이 백인 노동자들에 비해 해고될 확률이 50퍼센트나 더 높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막대한 비용을 컨설팅에 쏟아부으며 노조를 저지하는 ‘세련된’ 방안을 고안하고, 노동자들의 소셜미디어를 감시하고,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 협박과 반노조 선전을 진행했지만, 결국 그들이 무시하고 멸시한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막지 못했다. 아마존뿐 아니라 최근 미국에서 노조 조직화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화에서도 사측의 노조 저지 공작은 비슷하게 펼쳐졌다. 평범한 노동자들이 거대한 기업에 맞서 싸운 투쟁과 승리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잘나지 않은 다윗들도 조직된 힘으로 함께 싸우면 거대한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는 것. 

 

아마존 노동자들과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승리가 개인적으로 지금 나에게 특히 더 값지고 고맙게 다가온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서 나는 한동안 세상일에 관심을 끊으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충격으로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대로 돌아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세상이 계속 돌아갈 수 있어? 어떻게 세상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제 할 일 하면서 살아갈 수 있냐고? 마치 나만 고립된 듯했다. 외로움과 심지어 배신감까지 느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에게 이 세상은 끝인 것 같았다. 

 

그러다 올 초 들려온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과 그 뒤를 이은 아마존 노동자들의 승리를 보면서 마음속 무언가가 다시 꿈틀대고 있는 걸 느꼈다. 멈춘 것 같았던 내 심장이 다시 뜨겁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웅크리고 있는 동안에도 세상이 씩씩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그래서 어느 날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때 다시 열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그것이 가능하게 계속 싸우고 있던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골리앗에 맞선 다윗들, 너무 고마워요. 당신들 편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다시 누리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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