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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예술가입니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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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우리 아빠는 예술가입니다

김도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 지회장


 

"우리 아빠는 예술가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딸 지호가 판사에게 제출한 군더더기 없는 탄원서의 첫 문장입니다. 논리가 필요하지 않은 일을 논리로 뒤집기 위해 노력해 온 지난 시간이 무색해지는 단순명료한 한마디였습니다. 사실 아빠가 왜 재판을 받는지 설명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타투는 의료 행위이기 때문에 의사가 아닌 아빠가 타투를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왜 타투가 의료 행위인지가 먼저 설득되어야 하니까요. 논리의 친구 소크라테스나 관우의 뼈를 긁던 화타라도 나타나 지호에게 왜 타투가 의료 행위인지 설명해 주면 참 감사할 것 같습니다.

 

김도윤 지회장의 타투 작업실. 사진 제공_ 김도윤

 

아쉽게도 대한민국 행정부(행정 실무자들)도 설명을 해 줄 수 없어 보입니다. 2015년 고용노동부는 미래 유망 신직업 17개 중 하나로 타투이스트를 선정했고, 직업 코드가 발급되었습니다. 국세청은 정식 사업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문신업’이란 직종명을 만들어 주고, 사업자등록을 권장하여 직권으로 등록시키기도 합니다. 행정부는 타투를 의료 행위로 판단하고 있는 사법부의 판례를 전혀 모르거나 오히려 정반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편 같아서 고맙기도 하지만, 국세청의 권고를 무작정 따를 수는 없습니다. 사업자등록까지 내고 이 일을 하다가 단속이나 신고를 당하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 보건범죄단속법 위반으로 기소되어서 최소 징역 2년부터 선고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만 타투유니온 조합원 중 1퍼센트에 해당하는 6명이 징역 구형을 받게 되어 변호를 진행 중입니다. 물론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아 전과자가 된 예술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입법부(국회)도 설명을 못 할 것 같습니다. 대다수의 국회의원들과 의원실의 실무진들은 타투가 의료 행위가 아님을 인정하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국회에선 타투 법제화를 위한 법안이 계속 발의 중입니다. 최근 13년간 꾸준히 발의되고 있고, 2021년엔 총 6개의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문제는 의료 단체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는 보건복지위 의원들만 유독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관련 법률을 심사하고 본회의에 넘겨야 할 보건복지위 의원들이 13년간 회기 마감을 통한 폐기라는 방법으로 직무유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결국 타투가 왜 의료인지 설명해 줘야 할 당사자는 보건복지위 의원들인데, 업무의 결과를 봐서는 그리 현명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해 보입니다.

 

사실, 사법부(재판부)가 설명을 해 줘야 할 당사자입니다. 1992년 첫 단추를 잘못 꿴 그 녀석이니까요. 이 판례는 이웃 나라 일본의 것을 그래도 베껴 온 사법 촌극입니다. 게다가 원작자인 일본마저 몇 년 전 최고재판소의 결정으로 이 판례를 폐기했습니다. 이제 자존심도 없이 남의 판례를 가져다 쓴 대한민국 하나만이 세계 유일의 타투 범죄화 국가입니다. 더 실망스러운 부분은 법이 원칙 없이 누군가의 불호를 보위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1992년 당시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타투를 조폭의 문화라 여기며 싫어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판례는 타투가 의료인지 아닌지에 대한 학술논리적 판단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타투와 가장 먼 의료 영역으로 판결하여 국민들이 싫어하는 타투를 어느 누구도 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습니다. 법의 존엄함을 지켜야 할 법관들이 국민 정서를 보위할 목적으로 법을 재료로 사용하여 못 먹을 요리를 만든 것입니다. 이 ‘남이 만든 판례’를 31년간 뻐꾸기처럼 지저귀는 것은 작년 12월 10일 제 재판의 1심 판결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서울북부지법 김영호 판사는 재판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미루기를 반복하며 장장 8개월의 시간을 고민하고도 똑같은 소리의 판결문을 던졌습니다. 유죄 선고에 실망한 것이 아니라 피고의 귀한 시간을 허비시키고도 그 숙고의 결과가 판결문에 담기지 않아 실망스러웠습니다. 숙고할 문화적 소양이 부족했거나, 판사의 작문 실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할 수밖에요. 아직까지 제가 경험한 재판부를 봐서는 사법부 역시 지호에게 설명을 해 줄 깜은 되지 않아 보입니다.

 

2021년 5월 28일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김도윤 지회장. 사진 제공_ 김도윤

 

정말 찬란하게 빛나는 민주주의 강국입니다. 삼권분립이 너무 확실해서 서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이 삼부의 무능함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타투노동자들의 삶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타투이스트들이 현행법상 범법자라는 이유로 돈을 노린 사기나 협박에 노출되고, 성범죄를 당하고도 대응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습니다. 손님과의 사소한 트러블도 결국 신고를 하겠다는 협박으로 귀결되고, 경찰 조사 과정을 못 견디고 스스로 생을 놓은 동료들도 여럿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타투와 타투이스트들은 단언컨대 세계 최고입니다. 해외 유명 타투 스튜디오의 메인 작업자들은 모두 김씨, 이씨, 박씨들입니다. LA, 뉴욕 같은 대도시에 새로운 스튜디오가 생기면 한국인 작업자를 몇 명이나 섭외할 수 있는지로 스튜디오의 성패가 결정됩니다. 제가 종종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의 타투를 작업해 주는 것처럼, 해외 유명 연예인들의 타투이스트들은 대부분이 한국인입니다. 해외 웹진은 ‘세계 타투의 트렌드는 서울에서 시작된다’라고 타이틀을 씁니다. 최근 5~8년간 세계 타투의 흐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곳이 서울이고, 한국인 타투이스트들입니다. 서울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 타투이스트를 브래드 피트가 찾고, 어떤 작업자에겐 일론 머스크의 전용기를 보내겠다며 초대를 합니다. 타투가 정말 의료 행위라면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에게 명예의사 학위라도 수여해야 할 판입니다. 물론 말도 안 되죠. 처음부터 타투는 의료가 아니니까요.

 

미국 배우 브래드 피트 팔에 있는 벌 문신은 타투이스트 김도윤 씨의 작품이다. ⓒ버라이어티
방송화면 갈무리

 

논리가 아닌 상식을 말하고 싶은데, 상식을 간절히 말해야 하는 현실이 몹시 슬픕니다. 약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며 요구한 것도 새로운 철학과 이념이 아니었습니다. 법전에 있는 법을 지켜 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였습니다. 타투이스트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요구하는 것도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입니다.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미술은 미술로, 예술은 예술로, 의술은 의술로. 원래 있어야 할 지극히 상식적인 자리로 되돌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직업 코드는 있으되 직업은 아니며, 사업자등록은 낼 수 있으되 노동은 아니고, 세금을 낼 수 있으되 세금을 내면 징역을 가야 하고, 불법 의료 청탁자는 무죄이되 수행자는 유죄이며,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타투를 가지고 있으되 타투이스트는 존재하면 안 되고, 정작 눈썹 문신을 한 대선 후보는 타투 법제화 공약을 하지 않는 비상식을 그저 오롯이 상식으로 돌려놓자는 것입니다. 예수의 핏값으로 인류가 구원을 얻은 성경의 메시지처럼, 전태일 열사의 핏값으로 한국의 노동자들은 수라도를 벗어나 상식으로 한 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구석에서는 50년 전과 매한가지로 상식을 요구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아픕니다. 타투는 문화예술노동입니다. 이것이 상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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