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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이 공공병원을 쥐락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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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이야기_ 지역공공병원 만들기(1)

 

관청이 공공병원을 쥐락펴락


문정주/ 의사. 《뚜벅뚜벅 이탈리아 공공의료》 저자

 


공공병원을 세우려는 지역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국가 책임으로 운영되는 공공병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한 결과다. 

시민을 위한 좋은 공공병원을 어떻게 만들까. 먼저 공공병원의 ‘지금’을 알아야 한다. 공공병원이 지금 왜 부족한지, 왜 작고 약한지, 현실을 바꿀 방법이 무언지. 특히나, 공공병원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관청 권력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한다.

 

진주의료원 폐쇄에서 드러난 도청의 횡포


공공병원의 ‘지금’에 가장 큰 책임이 ‘상급 관청’에 있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국가 체계에 속한 모든 기관에는 상급 관청이 있어 조직, 인사, 예산 등을 감독한다. 국민의 세금을 올바로 쓰게, 부정부패가 차단되게 하는 감독인 만큼 필요한 일이다. 보통은 쌍방 간 소통으로 무리 없게 감독권을 행사하지만, 상하 관계가 원체 분명한 탓에 별일도 숱하게 벌어진다. 지역공공병원의 대표 격인 지방의료원에 상급 관청은 시청이나 도청이다. 

2013년 2월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쇄 방침을 발표했다. 이유가 의료원의 ‘과도한 적자와 부채, 강성노조·귀족노조’라 했지만, 어이없는 핑계였다.

진주의료원. 사진 제공_ 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의 기능 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었다. 전국 지방의료원 평가에서 해마다 바닥권에 머물렀고 나아지려 노력한다는데 속도가 더뎠다. 그 이유를 ‘알 만하다’ 싶었던 건 진주에 가 보고서였다. 거의 100년 동안 도시 중심부, 왕래가 잦은 거리에 터를 잡고 진료해 온 의료원이 변두리에 덩그러니 옮겨져 있었다. 도청이 내세운 명목은 ‘진주시 현대화와 균형발전’이라 했다. 이전 방침을 확정한 2002년부터 도청의 관심은 토지 거래와 건물 신축에 쏠리고 진료 현장에는 예산 투입이 끊겨, 의료 시설과 장비가 낡아 가면서 의료진마저 떠나 버려 신축 건물이 준공된 2007년 즈음 의료원은 거의 빈사 상태였다. 새로 의료진을 확보해 진료 역량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으며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옮겨간 위치였다. 도심에서 7킬로미터나 떨어진 데다 당시 대중교통도 거의 없는 외딴 그곳은 환자들이 찾아오기에 너무 멀었다.

논란이 한창이던 때 진주에서 친척을 만났다. 개인의원 원장인 그는 의료원 직원들이 문제라고, 노조를 만들어 요구만 해 대고 일은 게을리하니 저렇게 되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외딴 변두리로 옮겨 버린 게 결정적’이라는 내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의료원을 옮기는 걸 누가 결정했을지? 멈칫하던 그가 말했다. 노조겠지? 아닌가?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노조에 무슨 권한이 있겠어요. 의료원이 도청의 산하기관인데요. 옮기든 짓든 결정은 도청이 하죠. 그러니 의료원 문제에 크게 책임져야 하는 쪽은 도청이에요.”

친척은 자기주장을 접었지만, 뚝심의 홍준표 지사는 그러지 않았다. 모든 반대를 무시하고 의료원 폐쇄를 밀어붙였다.

폐쇄 과정은 비정상적이었다. 도청 식품의약과 과장인 박권범 씨가 의료원 원장 직무대행에 임명돼 이사회 의장까지 겸하며 실무를 지휘했다. 그가 소집해 의료원 폐쇄를 결의했다는 회의는 이사들에게는 통보도 되지 않았던, 그야말로 유령 회의였다. 그런데도 회의록이 작성돼 폐쇄 집행의 근거로 이용되었고(국회 공공의료정상화를위한국정조사특별위원회 영상회의록) 국회에서 그 문서의 불법성이 지적되자 박 씨는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는 식으로 대답하며 모든 것을 노조 탓으로 돌려 국회의원들의 분노를 샀다. 어찌 되었건 진주의료원 폐쇄는 완료되었고 홍 지사는 그 건물에 경상남도 서부청사를 개청했다. 선거 공약이던 ‘서부청사 설치’를 이행한 것이다.

그 뒤로 박 씨는 승승장구했다. 2013년 통영시 부시장에, 2014년 도청 보건복지국장에 오르고 2016년에는 고향인 거창군 군수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되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선거 결과는 낙선이었고 그를 기다리는 건 경찰 조사였다. 혐의는 ‘여론 조작’과 ‘공무원 지위를 남용한 개인정보 도용’으로, 사건인즉슨 홍준표 지사가 학교 무상급식을 폐지한 뒤 반발한 주민들이 지사를 소환하는 운동을 일으키자 이에 맞대결로 지사의 최측근들이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교육감에 대한 주민소환을 추진하면서 서명 숫자를 부풀리려고 가짜 서명부를 만든 것이다. 박치근(경남FC 대표)과 박재기(경남개발공사 사장)가 직원을 동원하고 박권범은 병원과 건강관리협회에서 환자의 개인정보 19만 건을 받아 와 넘겨주었다. 모두 24명이 검거돼 박치근과 박재기가 징역 1년 6개월씩을, 박권범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사람이 의료원에 감독권을 행사했으니 무슨 짓인들 안 했을까 싶다. 정치인 홍준표 씨가 도지사로 있었던 건 4년이지만, 공무원 박 씨가 도청에서 지낸 기간은 거의 40년이고 과장 이상의 직위를 누린 기간만 10년이다. 공공병원에 대한 관청의 권한을 견제할, 권력의 횡포로부터 보호할 방법이 절실하다.

 

자격 미달인 원장을 뽑으려는 무리수

지방의료원 원장은 공개 모집으로 뽑는다(지방의료원법 제8조). 임명권은 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있으나 먼저 법률에 따라 임원추천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구성돼 임용 과정 전반을 관장하고 임용 후보자를 추천한다.

몇 해 전 A도의 요청으로 B의료원 원장을 임용하는 위원회에 위원장을 맡아 참여했다. 위원 7인은 교수, 시민단체, 자영업자로 다양했고 나만 외지인일 뿐 모두 그곳 주민이었다. 첫 회의에서 도청이 준비한 공개 모집 공고문, 평가 기준, 추천 기준 안을 살펴보던 중 특이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위원회가 응모자를 평가한 뒤 임용 후보로 ‘의사·비(非)의사 직능을 구분해 상위 2명’을 추천한다고 하여, 단순히 ‘2명 이상’을 추천하게 되어 있는 법령(지방의료원법 시행규칙 제2조)과 달랐다. 대개 의료원장 공모에는 의사들이 다수 응모하며 평가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므로 최종 추천받는 후보가 모두 의사인 예가 많다. 그런데 비의사를 후보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면 평가 결과와 관계없이 비의사를 우대해야 할 것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했다. 이처럼 특이한 대목을 추천 기준에 넣은 근거가 있는지 담당 사무관에게 묻자 ‘지사님 방침’이라 해, 그렇다면 결재받은 문서가 있을 테니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다시 열린 회의에서 사무관의 말은 달랐다. 지사 방침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결재 문서는 없으며 그 대목은 단지 ‘관례적’일 뿐이라는, 이해하기 곤란한 설명이었다. 위원회는 논의 끝에 그 ‘관례적’이라는 대목을 추천 기준에서 삭제하고 대신 법령만 준수해 ‘2명 이상’을 추천하기로 했다.

그날 면접 평가를 하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위원들은 먼저 대상자의 서류를 검토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큰 문제가 불거졌다. 면접 대상자 중 절반 이상이 원장 임용 자격(A도 의료원 설립 및 운영 조례 제5조)을 갖추지 못한 결격자였다. 자격 심사는 사무관 책임으로 도청 공무원들이 맡았던 것인데, 근무 경력 등에서 명백히 자격 기준에 미달하는 이들을 통과시켜 면접 대상에 이름을 올려 준 것이다. 단순한 실수라기에는 석연치 않았고 자격이 부족한 응모자 중 누군가를 원장에 임용되게 하려는 의도를 의심하게 했다.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을 되풀이하는 사무관을 내보내고 위원들이 회의를 열어, 예정된 면접을 취소할 뿐 아니라 아예 공모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의 단호한 의결에 도청은 재공모를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A도는 원장 임용을 공정하게 할 뜻이 없었던 듯하다. 만약 그 임원추천위원회가 아니었으면 A도의 어두운 목표는 달성 가능했을 것이다.

 

관청을 견제할 권력자가 시민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관청의 권한이 크지만, 참여하고 감시하는 국민에게는 이를 견제할 힘이 있다. A도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작지만 생생한 사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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