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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말할 때 진짜, 자유와 해방이 온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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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가요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_ 《말하는 몸》

 

‘몸’을 말할 때 진짜, 자유와 해방이 온다


유동걸/ 영동일고 국어교사, 《토론의 전사》, 《질문이 있는 교실》 저자


어떤 이는 말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몸이야말로 나란 인간의 ‘자가 건축물’이다. 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건축의 역사와 과정을 고백하는 것이 된다. 내밀하고 솔직하고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평소 자기 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말하고, 나누며 살아갈까? 아마도 흔치 않고 쉽지 않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찔려 온 상처 때문에 두려워 그렇고, 위아래를 훑는 외부의 시선에 길들여진 몸에 짓눌려서 그렇고, 자기 스스로를 억압하는 욕망의 기제에 사로잡힌 보이지 않는 손에 재갈 묶여 또한 어렵다. 존재는 참을 수 없이 가볍지만 몸은 더할 나위 없이 무겁다. 
어느 자리나 몸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굳어진다. 몸이 먼저 알고 반응을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몸 이야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더더욱 해야 한다. 몸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어떻게 해야 자기 몸에 대한 말문을 당당하게 틔 울 수 있을까? 
박선영 피디와 유지영 기자 두 사람이 다양한 목소리로 자기 몸에 대해 말 할 여자들을 찾아 나섰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범죄심리학자, 국회의원, 노동운동가를 비롯해 장애인, 콜 센터 상담원, 유튜버, 사진가, 승무원, 누드모델, 무용가와 여성들의 성적 자유와 해방을 위해 섹스 토이숍을 운영 하는 분까지 다양하다. 온몸으로 살아가며 고군분투하는 88 명 여성들의 몸에 관한 목소리를 팟캐스트에 모신 뒤 나중에 책으로 엮었다. 제목은 《말하는 몸》이다. 
지난달부터 난생 처음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 했는데 거기서 소개받아 읽었다. 여성의 몸이 얼마나 섬세하게, 많이 아픈지 새삼 깨달았다. 비록 딸은 없지만 엄마, 누 나, 아내, 여제자 등 많은 여성들과 평생을 한 공간에서 살아 왔다. 나 하나의 몸과 삶에 매달려 사느라 그분들의 몸에 너 무 무지하고 무감했음을 고백한다. 통념적인 앎이 얼마나 빈곤하고 피상적인 느낌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반성했다. 

 


 

 

《말하는 몸》이 들려주는 여성의 몸 이야기를 들으니 우선 여성들의 몸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고, 남자로서의 내 몸 또한 무슨 말을 하고 살아가는지 살펴보게 된다. 
극단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남 불문하고 멀쩡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남자들은 스트레스와 술·담배로 인한 건강 문제 걱정이나 중년기 뱃살 정도가 몸 고민의 전부라면, 여성들은 타고난 운명의 생리통에서부터 임신과 출산의 고통은 물론이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육체적·감정적·성적 고통이 살아갈수록 태산임을 알겠다. 
희생, 상처, 도전, 개방, 계발, 치유, 환대 등의 무수한 몸 이야기 가운데 삼성의 공장 산재 노동자 한혜경 님과 엄마 김시녀 님의 10년 투쟁 사연과 비장애 남성과 결혼을 꿈꾸다가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이 남편의 ‘정상 몸종’임을 깨닫고 자신보다 더 힘든 장애를 가진 남자와 결혼한 배복주 님,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공장 노동자로 살고 싶다는 김진숙 님 이야기 등이 가슴에 남는다. 
자본에 묶여 살아가는 이 사회 속에서 인간 특히 여성을 옥죄는 몸의 소재가 얼마나 다양한지 다시 눈이 떠진다. 눈에 확 띄는 산업재해의 피해와 반평생 이상의 장애는 말할 것도 없고 털, 피부, 코르셋, 담배, 임신, 출산, 노화, 채식, 감정노동, 시선, 차별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이 몸을 관통하며 사람을 비인간화하는 세상이 보인다. 결국 존재의 집인 몸이 존재 자체를 넘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인간화하는 세상에 맞서 인간 본연의 삶을 찾아가는 인 간의 땀내 나는 이야기가 그래서 반갑고 고맙고 뭉클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연들이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고 용기와 희망을 준다. 굳이 여자 남자 가를 것 없이 평등 하게 살아가는 생명의 고귀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남자라면 더더욱 돌아보고 실천할 노력들이 많아질 테니까. (책 속의 예를 든다면 자기 여친에게 스스로의 몸을 마음껏 탐색할 수 있는 도구를 선물한다든지 등등) 
아, 이 책을 처음 기획한 유지영 기자는 2018년 록산 게이 의 《헝거》(사이행성)라는 책을 읽고 몸에 대해 더 이상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자기 몸에 대해 더 당당하고 힘찬 응원의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다면 《말하는 몸》과 더불어 《헝거》도 추천한다. 
하나 더, 눈보다 귀가 발달해 듣기를 더 좋아하는 독자시라면 책을 읽어도 좋지만 두 여성이 진행한 ‘말하는 몸 팟캐스트’를 들어도 좋겠다. 글도 물론 힘이 있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의 생생한 육성(肉聲)이 듣는 이들의 가슴을 더 후벼 파 면서도 후련하게 해 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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