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막내 작가 새로 구해다 줘?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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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막내 작가 새로 구해다 줘?

이새봄/ 대학원생

 

저는 ‘월간 〈작은책〉’을 연구하는 학생 노동자입니다.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속도가 더디지만, 그래도 꼭 해내겠다는 일념으로 천천히 준비하고 있어요. 95년도 창간 준비호부터 시작한 <작은책>을 읽어 오며 저도 글을 써 보내고 싶어졌어요. 근래 자유롭고 편하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써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노동자 글쓰기’를 공부하는 학생이에요. 언젠가 논문 심사위원 선생님께서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어요. 왜 하필 노동자 글쓰기냐? 그때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요. 그저, 저희 아버지가 노동자이시고 제가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전부예요.
 

아버지는 저를 대학에 보내시겠다고 제가 수험생이 된 이후로 새벽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했고, 퇴근하고 저녁 땐 지하철에서 밤새 선로 공사를 하셨어요.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 고3이던 제 몸무게와 비슷했어요. 아버지를 보며 매일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만 할까?’, ‘아버지의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고 고민했어요. 아버지는 노동자로 30년 이상 일만 하며 살아왔죠. 사회는 아버지를 ‘일용직 노동자’로 분류하지만, 그 인생에는 이런 사회구조가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의미와 가치가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 역사의 결에 무수히 존재해 왔던 노동자들의 삶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세상 이 반짝이는 보석 같은 삶만 조명해서 그렇죠. 투박하고 빛바랬지만, 무엇보단 단단한 돌멩이의 가치를 보지 못해요.


 

대학에 들어가며 바로 알바를 시작했어요. 받은 용돈으로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가, 학교 매점에서 빵을 사 먹다가, 문득문득 갑자기 메마르고 늙어 버린 아버지가 떠오르면 먹먹해져 도저히 음식을 삼킬 수 없었거든요. 학교 끝나면 빵집으로 뛰어가 네 시간 동안 빵 궤짝을 나르고 당시 시급 4,860원에 더 쳐 줘서 받은 2만 원을 손에 쥐고 다시 집까지 뛰어갔어요. 대학원에 와서는 조교 일을 하고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과외와 학원 수업을 하러 갔죠. 솔직히 가끔은 친구들이랑 학교 앞 카페에서 수다 떨거나 도서관에서 늘어지게 죽치고 앉아 있거나 교수님, 동기, 선후배들이랑 술집에서 맘껏 이야기 나누고 싶기도 했어요. 
 

지금은 한 방송국에서 막내 작가로 일하고 있는데, 며칠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부장님이랑 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새봄 씨 일 처리가 느리다고 했다고. 그래서 부장님이 “왜, 막내 작가 새로 구해다가 바꿔 줘?”라고 했대요. 팀원들에게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라 했다고 제 선배 작가에게 들었어요.
 

자기 연민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애썼어요. 힘들다는 핑계로 나의 잘못과 부끄러움도 모른 채 그저 남 탓, 세상 탓만 하며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일하며 억울하고 속상해도 그냥 참았어요. ‘죄송합니다’, ‘다시 해 보겠습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어요. 철저히 ‘을’인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은 지금도 저는 철저히 ‘을’이기 때문에 무슨 말도 할 권리가 없어요. 그들은 한 번도 제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어요. 내 얘기는 왜 안 들어 주시냐고, 나도 할 말이 많다고, 우리 팀 성적이 저조한 모든 이유가 그저 부서를 옮긴 지 이제 4개월 된 나 때문일 수는 없다고, 나를 제외한 이들의 말만으로 나의 생계를 쥐고 흔들 순 없다고. 저는 돈을 벌어야 해요. 돈을 벌어서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부모님은 제가 취업했다고 좋아하셨는데, 이 일을 절대 말하고 싶지 않네요.
 

1990년대 <작은책>에 그런 말이 더러 있었어요. ‘80년대 노보에 쓰인 글을 읽는데 여전히 세상이 바뀐 게 없다.’ 90년대에 쓰인 <작은책>을 보며 저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2020년대에 접어든 지금, 세상은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네요.
그 ‘다른 사람 구해다 바꿔 주랴’는 말 한마디가 순식간에 저를 가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저는 한낱 부품처럼 쉽게 갈아 끼워도 되는 존재밖에 되지 않았던 건가요? 속상해서 조금 울고 싶은데, 부모님이 행여 눈치 채실까 오늘도 담담히 집을 나왔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아, 이래서 우리 세대가 공무원, 공무원 하는구나. 나도 공무원이나 준비할까. 

 

엄마도 아버지도 분명 살아오며 이런 부당한 일들을 당하셨겠죠? 그래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저희에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묵묵히 참고 견디고 일하셨을 거예요. 그러니 저도 포기할 수 없네요. 저는 아버지와 같은 노동자의 삶을, 그들이 쓴 글의 의미와 가치를 꼭 말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오늘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오늘을 살아 내야 해요. 엄마 아버지만은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모님께 미안해요. 저 오늘도 열심히 살아 볼게요. 

 

추신. 저를 교체하겠다고 통보받았어요. 다른 곳에서 잘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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